노진호 대전본사 편집부장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1988년 크리스마스이브. 대한민국은 '그대에게'라는 한 풋풋한 밴드의 음악에 또 한 번 열광했다. 훗날 '마왕'이 된 가수 신해철은 그해 대학가요제 대상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2014년 10월 27일. '마왕'은 떠났다. '의료사고'. 그를 보내주기에는 너무나 허망한 이유였다. 그해 가을 필자는 전국체전 취재를 위해 제주에 있었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팬'을 자처하며 '님'이라 부르던 그의 부고(訃告)를 해가 진 뒤에야 알았다. 숙소에서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또 5년이 흘렀다. 그는 없어도 음악은 계속 흘렀고 세상은 돌아갔다. 필자의 삶도 그랬다. 이제와 이별의 슬픔을 전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마왕'과 그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마왕의 시작은 '아이돌'이었다.

꽤나 예쁘장한(?) 외모도 그랬지만 음악도 그랬다. 첫 앨범(무한궤도)에 실린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보면 그의 '소년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 내 소년 시절에 파랗던 그 꿈을…." 슬픈 표정하지 말라고 애원하던 첫 솔로 앨범 때도 풋풋함은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소년스러움은 더 솔직해지기 위해 힘을 쌓는 과정이었다.

故 신해철은 '세상'에 대해 말했다. 그는 독설가였고 사상가이기도 했다. 마왕은 '개판 5분전 만취 공중해적단'이라는 곡에선 사회 양극화와 은둔형 외톨이 등을 다루기도 했다. "지겨운 세상 매일 같은 나날들 니네 다 가져라…." 3집 The World 앨범의 '세계의 문'이란 곡에서도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미래의 대환상 속에 병든 우리가 만든 세계를 보라/ 허락된 꿈만 꾸게 하고 계산된 양식 위에 서게 하고… 우리가 퇴락하기 전의 공간 자유롭게 꿈꾸던 공간을 기억하라…."

그렇다고 '로커(Rocker)' 신해철이 사회 비판적인 가사만을 쓴 것은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나'와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길 위에서 中)",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The Dreamer 中)"

그리고 그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도 말을 건넸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라며 훈계했고, "정녕 좋아하는 걸 골라 하려해도 다 못하고 죽을 정해진 우리 시간/ 이젠 네가 원하는 단 한 가지/ 기타를 잡아"라며 독려하기도 했다. 불후의 명곡이라 할 만한 '민물장어의 꿈'에서는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든 거울을 보내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라며 자조(自照)했다.

이미 느끼셨겠지만 필자는 음악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마왕의 생각을 온전히 전하긴 힘들 것 같다. 그리고 30년쯤 함께 한 그를 이야기한다는 게 아무래도 맨 정신으로는 어렵다. 지난 주말 유재석이 하는 '놀면 뭐하니'라는 TV프로그램에 그가 등장했다. 아주 잠시였고, 절묘한 순간 다음 주 예고로 넘어갔지만 슬픔과 그리움이 다가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주말 마왕을 위한 '무대'가 열린다고 한다.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언젠가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그랬듯 또 가슴이 먹먹해질 것 같다.

필자가 가장 바라는 것은 그가 의료사고 피해자로 기억되지 않는 것이다. 이 시대를 함께 했던 좋은 뮤지션으로 '마왕'이 기억됐으면 좋겠다. 그도 '얄리'처럼,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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