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49 김갑순과 충남도청 대전 이전
야마나시 파면… 도청 이전도 잠잠
대전 日 거류민 로비로 이전 결정
공주주민들 반대투쟁… 이전비 부결
日귀족 시라이시 앞세워 상황 반전
1932년 10월 1일 ‘대전 시대’ 열려

▲ 1933년 충남도청 전경
▲ 1931년 대전으로 이전하는 충남도청 상량식
▲ 도청을 대전으로 옮기는 대신 놓아준 금강대교 개통식
▲ 가운데 한복 입은 사람이 김갑순이다.

야마나시 조선총독은 김갑순의 유성온천장에서 ‘대전 일본 거류민으로부터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 달라’는 청탁과 함께 10만원의 거금을 받고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는 서울로 올라가는 일정을 하루 늦추고 계룡산으로 사냥을 나섰다.

일본인 경찰부장 등 많은 관리들이 수행했다. 그런데 산에 오르기 직전 동학사의 한 여승이 총독 일행을 가로 막았다.

“계룡산은 피를 흘리지 않는 명산입니다. 절대로 사냥은 불가하니 그만 하산하십시오.”

이와 같은 여승의 만류에 야마나시 총독은 버럭 화를 내며 “내가 부처님 앞에서 닭이라도 잡아 먹느냐”라며 계속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여승도 굽히지 않고 앞을 가로 막자 총독은 망설이다 물러서고 말았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을 안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 예감은 적중했다. 그가 받드는 다나까 수상이 정치자금 비리로 일본이 발칵 뒤집혔고, 조성총독 야마나시도 오오끼 비료회사로부터 100만원을 받은 것 등이 언론에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에 나와 있는 일본 본국의 특파원들은 매일 같이 야마나시의 행적을 취재·보도했다.

급기야 다나까 수상이 물러났고 그 해 8월 야마나시 조선총독은 해임이 아니라 파면을 당하고 재판에 회부됐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고 공주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공주가 도청 이전 계획이 끝났다고 판단해 반대운동을 접은 것은 큰 실수였다. 대전의 일본 거류민들은 야마나시 총독 대신 부임한 사이또 총독에게 은밀한 로비를 벌였으며, 마침내 1930년 1월 17일 사이또 조선총독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격적으로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허를 찔린 공주는 발칵 뒤집혔고 다시 도청 이전 반대투쟁을 벌이게 된다. 고인이 된 김영배 씨가 중심이 돼 격렬한 저항운동을 전개했으며, 경찰은 이들 주민들을 미행하고 뒷조사를 하는 등으로 압박했다.

그러나 김영배 씨 등 주민대표들은 경찰의 감시를 교묘히 피해 1931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도청 이전 반대 로비를 벌였다.

그 같은 노력이 일본 정치판의 미묘한 계파 싸움과 맞물려 의회 통과를 좌절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때 의회에는 충남도청 이전 비용으로 39만5000원을 상정한 상태였다. 일본까지 가서 도청 이전을 좌절시킨 공주 주민대표들이 기쁨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고 있을 때 또 한 번의 반전이 이뤄지고 있었다.

공주 주민대표들이 일본에 가서 로비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대전의 일본인들이 일본 귀족 출신 시라이시를 일본에 파견한 것이다. 시라이시는 귀족 출신이어서 일본 귀족원 의원들과 친교가 두터웠다. 그래서 중의원에서 부결된 도청 이전비 전액을 부활시켜 달라는 로비를 벌였고, 마침내 귀족원은 하원격인 제국의회에서 부결된 충남도청 이전비를 통과시켰다.

이렇듯 충남도청 이전안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대전이 판정승을 한 셈이다. 도청을 대전에 빼앗긴 대가로 공주가 얻은 것은 10만원을 들여 금강대교(금강철교)를 놓는 것과 여름마다 수해를 입던 공주 중심지를 흐르는 제민천 제방공사를 해주는 것.

김갑순의 토지 제공과 대전 일본인들의 끈질긴 로비로 충남도청은 마침내 역사 깊은 공주를 떠나 갓 태어난 대전으로 옮기게 됐으며, 1932년 10월 1일 개청식을 갖게 됐다. 대전이 10월 1일을 ‘시민의 날’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며 대전의 그 많은 김갑순의 땅은 농지에서 신 시가지 상업용지로 용도변경되면서 엄청난 지가 상승으로 거부가 됐다. 통 큰 재테크가 성공한 것이다.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충남역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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