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충남본부 취재부장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안도현의 시 ‘퇴근길’의 내용이다. 고단했던 하루일과를 뒤로하고 동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함께하는 삼겹살과 소주는 직장인들에겐 최고의 ‘피로회복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한 양념이나 조리법 없이 단순히 돼지고기 자체를 구워먹는 것이 어쩌다 한국 직장인들의 대표적인 술문화가 됐을까?

1980년대 정치·경제적 변화가 크던 시기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았던 직장인들은 소주 한 잔에 삶의 고단함을 녹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함께 곁들여야 할 안주가 필요했고 저렴한 가격의 돼지고기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그냥 굽기만’하면 되는 삼겹살은 필연적으로 가장 접하기 쉬운 안주감이 된다.

또 육류섭취가 충분하지 않던 시절 퇴근길 아버지가 신문지에 둘둘말아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온 삼겹살은 온가족의 영양식으로도 충분했다. 불판에 돼지의 뱃살을 구워먹는 삼겹살 문화는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돼지고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돼지 뱃살을 너무 자주 먹다보면 스스로의 뱃살이 늘어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발병하면서 삼겹살을 비롯한 돼지고기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동안 구제역 등 돼지와 관련된 감염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백신이 없어 치사율이 100%일 정도로 위협적이다. 한 가축감염병 전문가는 ‘구제역이 수류탄이라면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핵폭탄 수준’이라며 현상황의 심각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방역당국은 물론 국내 최대 양돈지역인 충남도 역시 전시에 맞먹는 수준의 유입차단 및 방역활동을 선언하고 확산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파주에서 첫 발생이 확인된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벌써 13곳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아직은 경기도 등 수도권에 발생 농가가 국한돼 있지만 경기와 인접한 충남의 불안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허술한 대처와 관리체계의 부실이 확산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확진 농가와 주변 농가에 대한 살처분에 투입된 인력들이 정부의 허술한 지침으로 인해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 최대 양돈산업 밀집지역인 충남의 인력이 경기지역 살처분 현장에 대거 투입됐음에도 관할 지자체 간 통보조차 이뤄지지 않아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등 파장이 일고 있다.

충남도 등에 따르면 첫 발생지인 파주지역 살처분부터 연천, 김포, 인천 강화 등에서 이뤄진 살처분에 충남에서 200명이 넘는 인력이 투입됐는데 이들 대부분은 외국인 근로자로 파악됐고 이가운데 30명 이상은 작업 이후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감염원과 접촉 가능성이 훨씬 높은 외국인 근로자가 살처분 작업 후 충남으로 복귀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얘기다. 더욱이 인력사무소를 통한 모집이다보니 동원된 외국인 근로자 중 불법체류자가 포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사후관리 체계에 그야말로 ‘구멍’이 뚫린 상황이다.

스페인에서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첫 발병한 후 청정국 지위를 되찾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전국적인 확산으로 인해 퇴근길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없어지는 일이 없도록 허술한 방역시스템에 대한 보완과 정부의 보다 꼼꼼한 사후관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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