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은 뛰어난 수컷과 암컷을 교배시켜 양질의 우유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 젖소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젖소의 99% 이상이 이렇게 인공수정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지금은 젖소가 아닌 인간에게서도 이와 같은 인공수정이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정자은행까지 생겼났다.

남성의 정자를 냉동시켜 보관했다가 인공수정을 원하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주는 곳이 정자은행이다. 보관기간은 몇 년까지도 가능하다.

남편 쪽 결함으로 임신을 못하는 여성이나 독신 여성이 임신을 원할 경우에 이 방법을 택하는데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백인 남성을 원했는데 아기를 낳고 보니 흑인이었다든지 절대 비밀로 되어 있는 정자의 수혜여성에 대한 신원이 노출돼 정자를 기증한 남자가 여성을 괴롭히고 끝내 파탄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또 아기의 아버지는 정자를 기증한 남성이냐,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이냐, 하는 법정소송도 벌어진다.

생물학적으로는 정자를 기증한 사람이 아버지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가정이 갖는 정신적 의미에서는 '아버지'가 아니라 익명의 정자 제공자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현상이 '부권(父權)의 상실'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아버지 없는 미국'을 쓴 데이빗 블랭컨헌은 이와 같은 정자은행의 출현뿐 아니라 미혼여성들의 혼외(婚外) 출산이 늘어가면서 어머니는 증가하지만 아버지는 줄어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국 어린이의 40%는 아버지 없는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며 아버지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아버지를 모른 채 자라는 어린이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미국 10대 청소년 중 정신치료를 받는 80%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랐고 자살자의 75%도 그렇다는 것이다. 범죄를 일으키는 것 역시 갓난아기보다는 '아버지의 부재'라고 지적한다.

영어로 남편을 허즈번드(husband)라고 하는데 그뜻 역시 '가정을 묶는 띠(band)'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띠'가 풀어지고 만다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될까?

하지만 혼외 출산이나 정자은행의 신세를 지지 않고 태어난 정상적인 아이들에게도 데이빗 블랭컨헌이 우려한 대로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이가 잠자리에서 눈을 뜨기도 전에 생활전선을 향해 집을 나서야 하는 아버지, 하루종일 일터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발버둥치다 밤늦게 귀가하는 피곤한 아버지, 이런 아버지를 부인과 아이들은 얼마만큼 느끼며 살까.

좀 일찍 집으로 돌아온다 해도, 그리고 주5일 근무제로 주말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 해도 레저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아버지들은 갈수록 왜소해지고 주눅이 들어 어떤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요즘은 거꾸로 아이들이 '아빠, 힘내세요!' 하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지난주 최전방 G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8명의 젊은 영혼을 떠나 보냈다. 그리고 서해상에서 적과 맞서 싸우다 산화한 6명의 젊은 해군용사들, 그 서해의 영웅들을 위한 진혼제를 올렸다. 그런데 어머니나 다른 가족들과 달리 몸속에서 흘리는 뜨거운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며 서 있는 아버지들의 침통한 얼굴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 또 하나의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마음 놓고 목이 터져라 울지도 못하고 충혈된 눈과 떨리는 입술을 꼭 깨무는 그 주름진 아버지의 얼굴들….

정말 이 나라 아버지들의 걸어가는 길이 너무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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