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무전여행·미국 종단 성공한 두 청년이 들려주는 희망 이야기

446일간 한복입고 남미 무전여행 이예나
타인 의식하며 수동적으로 살아오다 스스로 지키는 힘 기르기 위해 여행길
콜롬비아 있을 때 좌판 상인에 도움 받아... 가난한 마을 학교 건축비 기부로 보답해
여행후 상상력의 범위 늘고 자신감 커져

경비행기·캠핑카 美 3000㎞ 종단 권성빈
어려운 가정환경… ‘도전은 사치’라 생각, 롤모델 이동진 탐험가 프로젝트에 용기
하루 400km 쉬지 않고 운전하는 강행군, 하늘에 쏟아질 것 같은 별들 보며 뭉클
청년들 도전·여행 통해 자신 알아갔으면

▲ 지난달 대전역 지하3층에 개관한 청년활동공간 '청춘나들목'에서 만난 권성빈(왼쪽), 이예나 씨 모습. 사진=최윤서 기자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주는 말, ‘청춘’. ‘만물(萬物)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을 지닌 청춘은 언제나 싱그럽다.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여행 이후,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두 청년의 청춘은 더욱 그러하다. 446일간 한복을 입고 남미를 무전 여행한 대전 토박이 이예나(28) 씨와 경비행기·캠핑카로 미국 5개주 3000㎞ 종단에 성공한 배재대 재학생 권성빈(27)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결코 녹록치 않은 여행 도전기는 취업·연애·결혼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고 있다. 여행을 주제로 최근 개관한 청년활동공간 ‘청춘나들목’에서 두 청년을 직접 만나봤다.

대담=김일순 대전본사 교육문화부 부장

▲ 이예나 씨의 남미여행 사진. 본인 제공
-여행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이= “‘희피(喜披)’라는 타이틀로 활동하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체인지 메이킹 교육 및 여행 강연 등을 진행하고 있다. 원래 한국에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 생활이 즐거운 이유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년간 무전여행하며 겪은 자유와 행복을 학교현장에서 나누기 시작하며 아이들로 하여금 언젠가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간 어떠한 문제를 함께 공감하고 타인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는 일을 하고 있다.”

권= “요즘은 제주도에 빠져있다. 미국 종단 성공 이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LH가 후원하는 ‘제주 청년활동가 양성과정’에 합격했는데 제안서 제출을 위해 425㎞ 26코스에 달하는 제주 올레길을 직접 탐방했다. 탐방 이후 관광객이 쉴 수 있는 쉼터 및 지역 관광자원 개발 아이디어를 제출해 최종 3인에 선정됐다.”

-여행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이= “원래 타인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하며 수동적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나란 사람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른 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엘리베이터 타면 자동으로 올라가듯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 됐는데 졸업하면 이제 더 이상 올라갈 다음 층이 없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간 곳이 미국이었다. 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힘을 기르기 전까진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휴학을 하고 3년간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권= “어릴 때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가족들과 뿔뿔히 흩어져 살았다. 어려운 환경은 그렇게 ‘도전’을 사치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학 중인 배재대에서 롤모델이었던 탐험가 이동진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했고,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전이란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진 탐험가는 그가 몽골에서 말 타고 횡단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 ‘고삐’를 보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됐다. 영화 속 고삐에 묶인 말은 자유롭지 못했다. 풀도, 물도 먹을 수 없다. 그 모습이 마치 나 같았다. ‘가난함’에 묶여 있는 나는 마치 고삐에 묶여있는 말이었다. 고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초원을 달리는 말처럼 스스로를 가뒀던 틀을 깨고 싶었다. 탐험가 이동진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 권성빈 씨의 미국종단 중의 활동 모습. 본인 제공
-여행 중 겪었던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면.


이= “큰 돈을 갖고 시작한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조건이 열악했다. 콜롬비아에 있을 때 좌판에서 장사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분이 하루 종일 어렵게 판 돈을 내게 전부 준 적이 있다. 그 분 집에 놀러갔는데 화장실이 따로 없어 변기 옆에 침대가 바로 놓여 있었다. 본인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내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은 평생 잊지 못한다. 이후 두달 간 여행할 수 있는 비용을 장사해서 겨우겨우 모았다. 그런데 그 분에게 내가 받은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어느 가난한 마을에 학교 짓는 비용으로 쓰라고 모두 줬다. 당시 손을 덜덜 떨며 주고 돌아오는 길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하고 행복했다.”

권= “한국에선 하늘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미국 종단 중 우연히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은 별이 금방이라도 우수수 쏟아질 것처럼 많았다. 이밖에 장엄한 폭포와 바다 그리고 산 등 자연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그때 산 같은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다. 그전까진 성공하고 돈이 많아야만 남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공한 삶으로 뭔가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지금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 편하게 기대고 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평소 가치관을 여행 중 느낀 자연을 통해 크게 다짐한 것 같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도 있을 것 같다.

이= “남미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사용해 어느 정도의 소통은 가능했다. 그렇게 페루에 오래 있다가 브라질로 넘어가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포르투갈어를 쓰고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도 달랐다. 갑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서러움과 외로움에 배 갑판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한국에 정말 가고 싶었다.”

권= “8박 9일간 미국 3000㎞ 종단은 강행군이었다. 하루 400㎞씩 쉬지 않고 운전해야 했다. 이동진 탐험가와 팀원들 교대로 돌아가며 졸지 않으려고 에너지드링크를 한 박스씩 마시면서 운전했다. 폭우와 폭설에 고립된 적도 있고, 야생동물이 갑자기 나타나 놀랬던 적도 있다. 아무래도 짧은기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을 가기 전과, 갔다 온 이후 삶에 있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이= “밖과 안 모두 달라졌다. 먼저 밖은 얼굴이 바뀌었다. 검게 탄 얼굴과 함께 남을 의식하지 않은 모습이 됐다. 전엔 까무잡잡한 피부가 싫어 항상 화장을 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회색인간 이었을까.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면적으론 상상력이 풍부해졌다. 원래 걱정도 많고, 현실에 대한 부담감도 강했다. 나 역시 형편이 좋지 못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적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적당히 해야 할 일들만 했다. 그러다보니 불가능한 일을 상상할 일이 없었다. 여행 후 상상력의 범위가 늘어났다. 그리고 이젠 그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권= “자신감이 가장 많이 늘었다. 전엔 도전은 무섭고 두렵기만 한 것이었다. 그런데 해보니 용기는 준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부딪히는 것이란 걸 느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미국 40000㎞ 자전거 횡단, 전국 10개 국립공원 등반 등 버킷리스트 10가지를 정했고 차근차근 이뤄나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청춘’을 잊고 사는 오늘날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원래 용기있는 타입이 아니었다. 대학 4년 내내 도서관에만 박혀 인턴 지원서만 수십 장 썼었다. 그게 내 삶을 책임지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절박함은 컸지만 꿈은 없었다. 이 땅의 청년들 모두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안정적 삶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각자의 삶의 방식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고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았으면 한다. 내가 정말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가치를 찾고 이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면 행복해질 수 있다.”

권= “이동진 탐험가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절박하면 사람이 변한다’ 전엔 열악한 내 조건들을 핑계로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했다. 하지만 뭐든지 절박함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요즘 청년들 힘들다. 도전과 여행을 통해 성장하고 자기 자신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삶이 그저 어떠한 안정적 직업 등 명사가 아닌 ‘무엇인가를 어떻게 하고 싶다’와 같이 동사형으로 흐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변할 내 자신을 상상하며.” 정리=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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