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0 중원미륵리석조여래입상]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0 중원미륵리석조여래입상]
충북 미륵리 세계사 절터, 화강석 다섯개 쌓아 만들어, 사실적·추상적 수법 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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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원미륵리서조여래입상.
고려. 11세기. 높이 1060㎝. 보물 96호.

충청북도 중원군 미륵리 세계사(世界寺) 절터에 다섯덩어리의 돌을 올려 쌓아서 만든 거대한 부처님상이 있다. 머리위에는 고려불(高麗佛) 특유의 팔각형의 갓을 살짝 얹어 놓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현대조각같다. 참으로 편안하고 멋이 있어서 그냥 그 앞에 앉아서 오래 쉬고 싶었다.

비슷한 시기에 부여 대조사(大鳥寺)에는 같은 크기로 미륵보살을 만들고 논산관촉사에는 좀 더 크게 관음보살을 만들었다. 고려불교가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세 불상을 조성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된다. 이 세 불상이 갖고 있는 특성이 있는데 단독으로 서있고 용적으로 장대하며 중국불상이나 신라불상하고는 전혀 닮은데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마음에 비치는대로 우리의 부처님을 만들고저 한 것 같다는 것이다. 향토성(鄕土性) 짙은 정서를 지니고 있는 것인데 왜 하필이면 옛 백제 땅에서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내가 주목하는 바인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조선시대에로 내려오면서 민불(民佛)이 되고 석인(石人)이 되고 민화(民畵)등으로 계승된 것 같은 것이다.

이 여래상의 앞가슴에 새겨놓은 두 손의 만듦새를 잘 보라. 명품 중에서도 명품이다. 어느 조각가가 저처럼 오묘한 조각솜씨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 환조(丸彫)와 부조(浮彫)를 아울러서 동시적으로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회화적인 것과 조각적인 것을 혼합하고 사실적인 수법과 추상적인 수법을 혼용하는 것인데 우리조상들은 아주 옛날 고조선시대부터도 그런 특수한 기법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돌 조각가들은 단단한 화강석에다 거기에 어울리는 표현수법을 개발 발전시킨 것이다. 화강석이란 돌이 리얼한 묘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한 것이다. 중원미륵리여래상은 돌 자체로서의 생명력을 잘 살린 화강석조각의 멋진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뒤돌아서 나오는데 한 젊은이가 따라오면서 "선생님 저기 안내판에 졸작이라고 써있는데요" 수 십 년 전일이라서 설마 지금까지 그 안내판이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그런 일이 허다한 일이라서 걱정되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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