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비용을 축소해 허위 보고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승훈 청주시장이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확정 받아 결국 시장직을 상실했다. 시 공무원들은 대법원 상고심 판결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통합 청주시 수장으로 취임 이후 대규모 업적을 이어온 그의 낙마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문제는 지역정가에서 이 전 시장의 부인인 천혜숙 서원대 석좌 교수의 청주시장 '대리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천 교수가 청주지역 행사장 등을 돌며 광폭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또는 각종 비리에 연루돼 중도낙마한 선출직 단체장의 뒤를 이어 부인이나 동생 등 가족들이 출마하는 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사법부의 판단이 잘못됐다며 다시 한 번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중도 낙마로 인한 피해가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당장, 청주시는 부시장이 권한대행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종 현안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시장 권한대행이 소신껏 행정을 추진한다고 해도, 대형 사업의 경우 차기 시장의 의중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4년 청원군과 통합한 이래 KTX오송역의 명칭 변경, 통합 시청사 신축 등 산적한 과제도 수두룩하다. 이미 6분의 5에 해당하는 임기가 훌쩍 지나가면서 새로운 시장이 입성하면 그동안 추진했던 각종 정책이나 현안사업도 원점에서 재검토 하거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간 낭비는 물론, 그동안 투입했던 각종 예산을 허공에 날려 보낼 수도 있다. 그동안 경찰·검찰 조사를 받고 소송에 매달리면서 시정활동이 위축된 것도 사실이다. 검찰기소 이후 1심에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법정을 들락거리기 바빴던 시장이 시민을 위해 행정에 올인 하는 것도 사실상 어려웠다.

물론, 누구나 ‘선거에서 당선인이 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인 피선거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말릴 재간은 없다.

2003년 4월 충남 공주시장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오영희 씨는 선거과정에서 유권자에게 금품을 돌린 혐의로 물의가 일자 4개월 만에 시장직을 중도 사퇴한 남편 윤완중 전 시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시장에 당선됐다. 전남 화순군은 군수들이 잇따라 구속되거나 낙마하면서 민선 3기부터 5기까지 선거만 6번 치렀다. 그 과정에서 민선3기 '부부군수'(임호경·이영남), 민선4기 '형제군수'(전형준·전완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2007년 전남 장성군수 재선거에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낙마한 유두석 군수의 부인인 이청 씨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바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방자치가 아직도 온전한 지방자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부인이 출마해 당선될 경우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통해 남편이 여전히 행정에 깊숙이 관여할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상존해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든, 선거법 위반이든, 비리에 연루돼 그만뒀든 중도 낙마한 자치단체장이 그에 대한 아무런 책임 없이 또다시 동정론에 호소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성숙한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한 대승적인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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