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봉 대전동부소방서 법동119안전센터장
[투데이춘추]

“버스 운전기사가 소화기를 찾아 화재를 진압하려 했으나, 소화기 안전핀을 뽑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13일 밤,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 인근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화재 사고로 10명의 사망자와 또 다른 10명의 부상자를 낸 사고 버스에 탓 던 여행 가이드 이모 씨가 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버스기사는 소화기의 안전핀이 뽑히지 않자 소화기를 던져 운전석 바로 뒷좌석 유리를 깼고, 그 깨진 창문을 통해 10명이 빠져 나왔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안전핀을 바로 뽑아 초기에 소화기로 불길을 잡았다면 이처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고 내용을 접한 필자는 몇 년 전 흥행했던 영화 ‘타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고니(조승우 분)는 자신의 스승인 평경장(백윤식 분)을 죽인이가 정마담(김혜수 분)임을 알게 되자 그에 대한 사랑을 접고 증오하게 된다. 고니는 정마담 앞에서 그동안 딴 돈의 반만 자기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 쌓아놓은 돈다발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정마담은 소화기로 불을 끄려 하지만 움켜쥔 손잡이 때문에 안전핀을 뽑지 못하고 결국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가는 돈을 그저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만 보는 장면이다.

그동안 수많은 화재현장을 누벼온 필자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황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러하듯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그 상황 앞에서 침착성을 잃고 우왕좌왕 하게 된다. 불이 났을 때 가까이에 있는 소화기를 사용치 못하는 것도, 쉽게 빼낼 수 있는 소화기 안전핀도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는 당황하여 제대로 뽑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놀라 어쩔 줄 모르다보니 앞뒤 순서를 바꿔 정작 필요한때 사용조차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화재 현장에 출동해 보면, 뜻하지 않은 난감한 상황과 직면할 때도 왕왕 있다. 소화기가 불속에 통째로 던져져 있는 상황에서이다. 마음처럼 안전핀이 뽑히지 않자 급한 나머지 소화기를 그냥 불속에 던져 버린 것이다. 분말소화기는 절대 스스로 터져 불을 꺼지게 하지 않음도 유념해야 한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관광버스 화재시 상황이 긴박해 소화기로 창문을 깼겠지만, 당시 소화기를 이용하여 초기에 화재를 진압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내내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불이 났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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