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의회는 지난달 27일 62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우암산둘레길 조성 토지보상을 위한 측량·감정평가비용 5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언론에 따르면 반대 측 의견을 제시한 의원은 내덕 율량동을 지역구로 하는 기초의원으로 추정했다. 언론 인터뷰에 응한 모 의원은 “둘레길 조성 사업에 있어 여론이나 의견을 뭉뚱그려 섬세하지 못한 방법으로 진행했다”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청주시의회 임정수 의원은 5분 자유발언을 이용해 주민이 사업을 잘 알지 못하고 일방통행으로 차량의 통행권 보장에 대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을 지적했다. 지난해
보라색 제비꽃이 곱다. 작고 소박한 꽃송이가 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들과 집을 바삐 오가던 모습이 선명하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잠시라도 쉬게 할 요량으로 심부름을 가장한 외출을 보내곤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대문을 나서던 당신의 모습이 마치 보라색 제비꽃처럼 고왔다. 제비꽃이 다치지 않도록 돗자리를 편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카스텔라와 아버지가 좋아하는 약주 그리고 배추전과 명태전도 접시에 담는다. 생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던 약주를 어머니 전에도 올린다. 두 분이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은
오랜만에 동화 한편을 읽었다. 오래전 미호강에 서식했던 미호종개와 민물고기들의 생태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상상의 이야기로 엮은 김정애 작가의 "안녕, 나야 미호종개"다.이 책을 손에 집어 든 순간 몇 십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추억에 잠겼다. 나도 이 책을 쓴 작가처럼 금빛 모래톱과 은빛 물결이 반짝이던 미호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 유년을 보냈다. 강섶의 들꽃처럼 지난날의 기억들이 강물과 두두 물물 어우러져 고즈넉하게 바라보이는 그곳이 미호강이다. 넓은 바다를 볼 수 없던 유년의 여름날 추억들을 소복이 묻어 놓은 곳이 천변의 모
내가 일하는 곳은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라는 곳인데 독자분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다. 과거에는 문자를 읽고 쓰는 '문맹 퇴치'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미디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미디어 활용역량이 매우 중요해졌다. 바로 시민의 '미맹 퇴치'를 위해 노력하는 공공기관이다. 미디어를 건강하게 읽고, 쓰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도와주는 곳이다.이제는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하고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대 그리스 '아고라'에 사람들이 모여 삶에 대해서 논하고 소식을 전하며 토론을 했다. 현재의 미디어
[충청투데이 충청투데이] 툇마루를 뚫고 오른 대나무가 천정에 닿는다. 사람이 없으니 제가 주인인 듯 솟아오른 것인가. 시골집은 한동안 우후죽순으로 솟아오른 죽순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누렇게 바랜 벽지와 달리 거울에 오색종이 꽃이 곱게 피었다. 거울에 금이 간 것을 조치한 삶의 흔적이다. 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뒤란의 댓잎 서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비스듬한 부엌문을 밀고 들어선다. 가마솥이 있던 자리에 솥은 간데없고 온기 사라진 아궁이가 시커먼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한다. 땔감이 차곡차곡 쌓여있을 자리를 보니 식구들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삼월의 봄 햇살은 투명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정오가 가까워서야 커피 한 잔과 푸석한 식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창가에 섰다. 북새통 속에 분주하던 아침 시간을 보낸 몸은 찬란한 햇살을 받고도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이 된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이라면 서재에서 책을 뒤적이거나 컴퓨터 안 세상에 나를 던져놓고 몰입했으리. 때로는 느긋하니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전화기나 티브이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며 한유를 즐기고 있었을 터 일게다. 불과 얼마 전의 시절들이 먼 옛날인 듯 아득하기만 하다.곁에 사는 딸아이가
인류는 예전부터 인간은 어떤 종족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해 왔다.과거에 인간은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호모 사피엔스'라고 규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는 물건을 잘 만드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호모 파베르'라고 규정했다. 한결 과거보다는 명확해졌지만 생각해 보면 동물도 집을 짓고 황홀한 향수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역시 이것도 아니다.그래서 무언가 창작하고 생각을 하며 사회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요한 호이징하(1872~1945)는 인간은 놀이하
기후위기대응 등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을 위해 국가는 '자원순환기본법'을 제정하여 자원의 효율적 이용, 폐기물 발생 억제 및 순환이용의 촉진 등 중장기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국민적 호응은 미약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한 일회용 쓰레기 발생 폭증 및 폐기로 온 국토가 신음하고 있다. 청주도 마찬가지이다. 청주시의 1인당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1.33㎏/일로 전국평균 1.03㎏/일 대비 30% 높은 수치이다.왜 자원순환이 어려운 것일까? 첫 번째 철저한 분리배출에 대한 공감대와 인식증진 실패다. 그나마
불빛 탓인지 깊이 잠들지 못한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자길 포기한다. 창밖 산책로에 가로등 불빛이 환하다. 낮의 모습과는 달리 의자와 가로등 두 물상만이 어둠을 비켜서 있다. 나그네의 쉼터인 의자와 어두운 산책길을 밝히는 가로등, 특별할 것 없는 두 물상의 조화가 새삼스럽다.불빛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는 말은 핑계이다. 며칠간 신경 쓸 일이 많아 생각이 많아진 탓이다. 휴일에 집안일을 제쳐두고 깊은 잠에 빠진다. 주말 내내 누운 자리에서 꼼짝 않았으니 밤이 온들 잠이 오겠는가. 바늘처럼 날카롭던 신경은 느슨해졌으나 몸 안의 스트레스가
누군가에겐 그냥 하루이고 누군가에겐 흔적의 머뭄이다. 또 누군가에겐 간절한 기다림이고.구름이 날아가는 바람찬 날에 창망하기 그지없는 동해 바다를 찾았다.눈부신 햇살을 머금고 요동치는 웅장한 파도의 넘나듬에 망연히 시선을 빼앗긴다. 파도가 만들어놓은 포말들이 심연 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내 정신과 몸속에서는 작은 세포들까지 일제히 깨어나 꿈틀댄다. 바다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쿵쾅대던 심장은 더 크게 울렁거려 차디찬 해풍에 진정시키며 밀려오는 파도를 두 팔 벌려 흥건하게 맞이한다.산산이 부서져 내려야만 한다. 그래서 다시 솟구치는 창해의
양동이가 걸음걸이에 맞춰 엉덩이를 툭툭 친다. 당신은 신경이 쓰일 법도 한데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그의 시선은 오직 그녀의 발걸음에 꽂혀 있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면, 그는 재빨리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엎어 놓는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그 위에 풀썩 주저앉는다.할머니의 쉴 자리였다. 양동이는 휴대용 의자로 할아버지가 들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이다.두 분은 잠시 몇 마디 나누는가 싶더니 다시 일어나 걸어간다. 당신도 재빨리 물건을 챙겨 뒤를 따른다. 할머니의 걸음걸이는 중풍이나 큰 병을 앓고 계신 듯 많이 불편해 보인다. 할아버지
십 수년 만에 불어 닥친 한파로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참으로 매섭다.칼바람을 피해 뛰어가던 중 건물 틈새를 비집고 나온 푸른 잎사귀 앞에서 발을 멈췄다. 이 엄동설한에 그것도 콘크리트 건물 틈바구니에서 삐죽이 내민 여린 생명이 무얼까. 추위를 견디느라 힘에 겨웠는지 푹 주저앉은 몰골을 보듬고 보니 민들레다. 여린 잎사귀 아래로 굵은 뿌리가 튼실하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것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 살아있음이 분명하다.하필이면 왜 딱딱한 시멘트 건물 틈새의 척박한 곳에 터를 잡고 뿌리를 내렸으며 무엇이 그리 급하여 이 엄동설한에 무모하게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두 영화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북극의 나눅’은 로버트 플래허티가 1922년에 제작한 최초의 다큐멘터리영화로 규정 되는 영화이다.북극의 나눅이 1922년에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미국과 유럽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영화 비평계에서도 엄청난 노력과 희생으로 탄생한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다. 이러한 성공은 단순히 이국적인 정취를 보여주고, '탐험'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족의 인간다운 모습 자체를 보여주고자
X레이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울컥했다.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연골이 이렇게 다 달았으니 얼마나 아프셨을까”라며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머리를 한 대 세게 뚜드려 맞은 듯 정신이 혼미해지고 심장의 울림이 잠시 멈추었다.엄마는 오랫동안 무릎이 아파 고생하셨다. 관절염이라는 놈이 무릎에 들어와 병원에 수시로 다녔다. 2~3년 전부터 자꾸 다리가 오다리가 돼가는 걸 보면서도 “아이고! 우리 엄마가 자꾸 늙어 가시네. 우짜노”란 생각만 했다. 병원에 모시고 가 근원적인 치료를 할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께 전화
다행히 빨간 신호등에 차가 멈췄다. 옆 차로 다가가 경적을 울리니 운전자가 뭔 짓이냐는 듯 쏘아본다. 손을 내밀어 차 문을 열어보라 시늉하니 여전히 마땅찮은 표정으로 유리창을 내린다. “바퀴 펑크 났어요. 계속 달리면 휠도 망가지고 위험해요”라는 말을 듣고서야 화들짝 놀란다. 갓 스무 살을 넘은 듯 보이는 운전자의 모습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꼭 그 탓만은 아니었다. IMF와 더불어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멈출 줄 모르고 내리막길을 달렸다. 고민 끝에 사업을 정리하고 남편은 새로운 일을 찾아 서울로, 나는
동지섣달 차가운 밤하늘에서 고요한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공연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바흐의 소나타 선율로 장식하듯 세밑의 차가운 밤은 유장한 달빛으로 출렁대면서 차분한 고요로 젖어 들고 있다.세상이 온통 코로나 역병으로 짓눌려있었음에도 세월은 또 여지없이 흘러간다."비바람이 없어도 봄은 오고, 여름은 오고, 그대 눈물이 없어도 꽃은 피며 낙엽은 지더라."어느 가수의 애절한 노랫말이 가슴을 파고드는 밤이다.암울했던 한해였지만 내가 지나온 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머물렀던 때는 어디쯤이었을까. 돌아보니 가장 찬란하다고 느끼던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네모의 꿈’이란 노랫말이다.20여 년 전 노랫말에도 나오듯이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 학교의 구조는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네모난 교실 모양과 크기, 일자형 복도, 교탁을 보고 일렬로 앉는 좌석 배치, 딱딱한 책상과 걸상, 교실과 분리된 운동장 등 어느 동네 어느 교실을 가나 천편일률이다.그런데 요즘 이런 학교 구조에 대한 반성으
49만 3433명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이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자주 변하는 대입제도의 영향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으니 실제로 고3 학생은 이보다 훨씬 많다. 수능시험 이전부터 소소하게 합격자가 발표되고, 수시·정시·추가모집까지 충원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면 대입 최종 마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내년 3월 말쯤에 끝난다고 한다.아직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528명이 응시한 우리 학교 시험장에서는 특이 사항 없이 순조롭게 시험이 치러졌다. 발열 체크, 책상 가림막, 마스크 등 예년에 없던 절
어느덧 이십년의 시간이 지나갔다.새천년을 한 해 앞둔 초 가을날 문학이란 뜨락에 주춧돌 하나 얹고 작문의 첫걸음을 떼어 놓던 그날의 감정들을 되돌아본다. 점점 멀어져가는 청춘 앞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잃어가던 그즈음 먼 꿈으로만 알던 수필작가란 또 다른 삶을 향해 걸어가던 그 길은 신성했다.수필 한편을 써서 문학교실로 달려갈 때마다 땅바닥에 뭉개져 있던 자존감이 우뚝우뚝 살아나는 것을 실감하는 그 시간은 그야말로 희열이었다. 꿈을 향해 살아난 열정과 굼틀대며 솟아나는 감성의 조우는 내게 행복한 충격이었다.흩어졌던 삶의 편린들을 한 조
엄지 양옆에 도드라진 살이 눈에 걸린다. 어느 틈엔가 생긴 굳은살이다. 거칠고 메마른 손에 보습 크림과 오일을 수시로 발라보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살은 여기저기 스치다 종국엔 거스러미가 된다. 돋보기를 쓰고 제거하지만, 손톱 주변이 쥐 파먹은 듯하다. 그러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나의 손을 만져본 사람은 한결같이 '집안일을 많이 하느냐'는 질문이다. 돌아보니 깔끔을 떠는 성격이 한몫하는 것 같다.정리벽이 남긴 굳은살이다. 열심히 일하는 손이 예쁘고, 놀고 있는 게으른 손은 밉다는 말과 '죽으면 흔적 없이 사라질 몸인데 무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