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거세진다. 빗살에 작은 물방울이 생겼다가 모형을 잡지 못하고 사라진다. 무심코 자동차 유리창에 맺히고 사라지는 빗방울에 시선이 머문다. 자동차 와이퍼가 매몰차게 물방울을 밀어내지만, 신이 내린 빗줄기를 어찌 막으랴. 물방울은 유리창 표면에 일어난 생성과 소멸이 마치 인간사와 비슷하다.물방울이 빗살에 맞아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뒤이어 또 다른 물방울이 몸집을 키운다. 마치 실패에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자 애쓰는 인간의 모습이다. 물방울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이 얼비친다. 우레를 동반한 태풍이 지나고 빗살이 부드러
순간이었다.발을 내딛는 순간 삐끗하며 균형이 흔들리는 걸 수습하기도 전 땅바닥에 몸은 벌써 엎어졌다. 넘어진 그 순간 아픔보다는 거릿집 앞에서 넘어진 몰골을 누군가 보고 있을 외간의 눈총이 먼저 얼굴 위로 전해지는 것 같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처한 상황이 꿈이길 빌었고, 현실이면 이 순간이 찰나처럼 지나가길 간절히 원했다.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쪼그리고 앉아 무릎의 흙을 털어냈다. 누구도 달려와 부축하지 않는 걸 봐서는 인적이 뜸한 시간이라 아무도 나를 본 것 같진 않았다. 일어나 아무 일도 없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아직도 생생한 아궁이 땔감을 하던 고리타분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지금이야 어엿한 입식부엌으로 개조를 했지만 27년 전만 하더라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도 하고 밥을 해먹던 시골 고향집, 아직도 그 고향집에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과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땔감을 하던 시절, 겨울이 오기 전에 땔감을 준비하는 것이 월동준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중요한 일이다. 집에 땔감이 그득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땔감이 충분해야만 한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겨
충북의 국회의원 정수는 8명이다. 청주시 4명, 충주시 1명, 제천·단양 1명, 음성·진천·증평 1명, 괴산·보은·옥천영동 1명이다. 그중 동·남부4군이라 불리는 괴산·보은·옥천·영동의 박덕흠 국회의원 국회윤리위특위 제소 건으로 시끄럽다.박 의원은 지난 2012년부터 8년간 국회교통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피감기관으로부터 가족회사 일감 수주 논란과 이해충돌 논란으로 징계안이 회부되었다. 논란이 일자 2020년 9월 국민의 힘을 탈당하였다. 수면하에 가라앉았던 사건은 15개월이 지난 2021년 12
산능선 풍경이 단출하다. 나무는 마음의 번뇌를 털어버린 듯 풍성했던 잎을 떨구고 초연히 산을 지키고 있다. 헐거워진 나뭇가지 사이로 파리한 하늘빛이 선명하다. 무심코 눈에 든 능선의 풍경이다. 나무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마주한다. 나무는 저 높은 곳에 단출한 모습으로 서서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나. 아니면, 춥고 외로운 시간을 인내하며 견뎌내는 것일까. 문득 그 속내가 궁금하다.능선의 느낌은 오뉴월과 사뭇 다르다. 나무가 모두 잎을 떨군 것은 아니다. 침엽수인 소나무는 푸른빛으로 겨울 산을 보듬고 있다. 능선의 나뭇가지
사위가 너무 조용하다. 아니 적막하다 못해 황량하다. 암만 둘러봐도 사방이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외딴섬에 철저히 혼자 남겨진 것이 틀림없다. 손만 뻗으면 어디서든 다 통(通) 할 수 있던 어제와는 사뭇 다른 처지에 두려움이 훅 몰려온다. 휴대전화기가 망가졌다. 소통(疏通)의 도구만이 아닌 분신처럼 긴 시간을 함께해온 행적들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예고도 없이 툭 하니 꺼져버리는 순간 나는 적막강산에 떨구어져 고독하고 한심한 사고의 수렁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시시각각 활발하게 요동치던 그 많던 연락처와 정보들과 파도처럼 출렁대
지난 한 해는 우직한 소의 심성으로 뚜벅뚜벅 천리를 간다는 우보천리(牛步千里)의 마음으로 코로나19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한 해인 것 같다.코로나19의 확산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시나브로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의 새해가 밝아 1월도 벌써 후반전이다. 재작년 2020년 1월 국내 첫 감염자가 나타난 이후 창궐한 코로나19 공포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가운데 세계 유수 여러 회사의 백신 개발로 어렵고 힘든 긴 터널을 지나 밝은 희망의 빛을 바랐지만 그도 잠시, 새로운 변이인 ‘델타’와
설이 다가옵니다. 설날은 우리민족 고유의 명절로 새로운 1년을 맞이하는 날이지요. 설날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올해는 2월 1일입니다. 임인년(壬寅年)의 시작이지요. 임인년은 검은호랑이의 해라고 하는데, 壬은 흑을 뜻하고 寅은 범을 뜻하기 때문이랍니다. 검은 호랑이 즉, 흑호는 우리 조상들이 가장 귀하게 여겼던 호랑이로 리더십, 독립성, 도전정신이 강하다고 합니다.그런 연유로 ‘2022년은 국운이 융성해질 거다’ 하여 매우 반기는 해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세계 10번째의 강국인 G10에 진입하였고, 당당히 선진
생수병이 플라스틱 고치에 들어 친친 감겨 매달려 있다. 고치를 탈피하고 날갯짓하는 나비의 우화를 꿈꾸는 것일까. 아니 환경파괴라는 오명을 벗고 비상할 날을 꿈꾸고 있다. 우리가 마시는 맑고 안전하다는 생수가 플라스틱 용기들에 담겨있다.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물과 오염의 주범 물질이 한 몸을 이룬다. 작품의 소재가 플라스틱 생수병인 한희준 작가의 작품전이다. 작가는 관람객을 호기심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던진 의미를 찾고자 집중한다.생수병을 소재로 다룬 작가의 시선이 특별하다. 작품에는 유화의 흔적도 보이
수도권으로 인구 및 산업·금융이 집중하면서 농촌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소멸위기에 처해 있다.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대추의 고장 보은도 마찬가지다. 이를 극복하고자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과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보은발전협의회도 마찬가지다. 지역경제 살리기를 위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지만 불통이라는 벽과 코로나라는 외부 바이러스 침입으로 활동의 제한을 받고 있다. 협의회 박환신 상임부회장은 ‘보은의 꿈’이라는 메시지를 필자에게 보내 간절함을 호소하고 있다. 전문을 각색해 실어 본다.‘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어려운 이때 희망의
바닷가 작은 한의원이다. 옛 가정집을 그대로 겸하는 듯싶다. 주방은 약방으로 거실은 침방으로 사용한다. 딸들과 여행 중에 몸 상태가 심상찮아 찾아온 한의원이다. 접수하고 삼십여 분 남짓 기다리는 중이다. 짧은 시간이 흘렀건만, 작은 어촌의 일상이 눈으로 본 듯 그려진다.잔뜩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걸어온다. 할머니는 의원을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허리를 편다. 그리고는 손에 들었던 가방을 바닥에 툭 던져두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곳엔 나뿐이다. 나에게 하는 말인가 싶어 멀쑥한데 이어 벽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다.퇴색한 생명의 조각들이 마지막 계절의 추억을 품고 마치 고별의 몸짓인 양 처연하게 전율하고 있다. 만추의 향연은 저마다의 빛깔을 아직 발하지도 못했는데 바람은 나무를 흔들어대니 가지 끝에 달렸던 잎새가 파르르 떨며 속절없이 멀어져만 간다. 구태여 밀어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떠날 텐데 왜 이리도 급하게 몰아치고 있는 것인지.비바람까지 몰고 온 상강이란 절기는 얄궂게도 가을의 등을 떠밀어대더니 결국 앙상한 나목만 가을이 떠난 휑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칠 전, 문학동인 선배님께서 아내와 이별을 준비 중이라는 청천
대한민국 중심지 보은은 내우외환의 위기에 놓여 있다. 내적으로는 극심한 갈등과 불평등, 외적으로는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보은군 인구현황 자료에 의하면 10월 말 기준 인구는 3만 1893명(세대수 1만 6968)이다. 출생자는 68명이고 사망자수는 421명으로 353명이 자연증감으로 줄어들었다. 65세이상의 노인인구는 1만 1460명으로 전체인구의 35.9%를 넘어섰다. 이뿐 아니라 전입은 1870명이고 전출은 1957명으로 87명이 더 빠져나간 상황이다.극심한 인구감소로 노동인력은 고갈되었고, 외국인 노동자는 코
스님의 장삼 자락이 큰 북 위를 춤추듯 넘나든다. 북소리에 다소곳이 집중하는 사람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이도 여럿이다. 내 앞 어린 남매는 호기심 가득한 몸짓에서 금방이라도 범종각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사물 소리를 찾아 산사에 오른 참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고자 산사로 오르는 길엔 적송과 단풍나무가 줄느런하다. 연화교를 건널 즈음 해는 서산을 넘는다. 태양의 여광이 남아 주변은 그리 어둡지 않다. 사천왕문에 들어서자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마당을 지나 범종각에 오르고 있다. 전각 왼편 금동 미륵 대불은 멀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일곱 살 손주 녀석이 거실을 가로질러 달리자 막 걸음마를 터득한 작은 손주가 뒤뚱대며 뛰어가 부둥켜안고 뒹구는 어울림이 앙증스럽다.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이토록 호사스럽고 어떤 음악이 이토록 고운 소리를 낼까. 천진난만한 모습에 마냥 취해있다 층간소음으로 연락이 오지 않을까 화들짝 놀라 아이들을 저지하면서도 마음 한켠은 짠했다."왜 할머니 집은 이렇게 넓은 거야?" 너희 집과 똑같다는 설명에도 도리질하며 할머니 집은 훨씬 넓단다. 녀석이 아파트 면적을 알고 말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알기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 아련
보은 거리는 농민들의 땀방울과 정성이 담긴 보은대추 판매가 한창이다. 지나가던 차량들은 빨갛게 익은 보은대추에 넋이 빠진 듯, 차를 세우고 경쟁하듯 대추를 담는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보은대추 한입 물면 그 사각거림에 침샘이 화수분처럼 솟아난다. 자식, 부모, 친구, 동료의 생각에 한 봉지 두 봉지 집어 들다 보면 어느덧 양손이 묵직해 온다. “왜 이렇게 많이 사가냐”는 질문에 “보은대추는 과일 중 으뜸으로 이 시기를 놓치면 먹을 수 없으니 주위에 나누어 먹으려 한다”며 “보은대추를 보고도 먹지 않으면 건강이 상한다는 말이 있지 않
나무 우듬지로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다. 저물던 태양 빛도 무심한 듯 제빛 한 줌을 보태고 독야청청하던 청솔 나무도 시월에는 회색빛 방울 견장을 준비한다. 아직은 여름날의 열기가 남았으나 산천은 시월을 준비하는 몸짓들로 부산스럽다.시월은 풍유와 허전함의 시간이다. 수확에 바쁜 들은 사뭇 부산스럽지만, 볏짚 둥치가 뒹구는 모습은 풍유 속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갈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보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결이 어디 있으랴. 계절을 분간 못 한 민들레가 바지런한 할머니 손에 뽑혀 빨간 바구니에 소복이 담긴 모습도 시월의 풍경이 된다.
왜 이리도 마음이 모질지 못할까. 크게 마음먹고 돌아섰건만 몇 걸음 채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어느 순간 화분 하나를 손에 집어 들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정원에 그득하니 자리하고 있던 오래된 화분들을 정리하자고 큰맘 먹지 않았던가.헐렁해진 정원의 여백을 느긋하게 즐기며 이젠 과욕을 부리지 말자 했거늘 며칠 전 각오가 무색하게도 꽃집 앞을 지나다 또 분 하나를 들고 와 한 자리에 터를 잡아 앉혔다.베란다를 정원이라고 이름하기엔 너무도 허름하고 작았지만 나름 계절의 변화를 느낄 만큼은 각기 다른 생명이 그득했다. 그곳은 풀죽은 자아
내가 근무하고 있는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시민들이 미디어를 활용해서 건강하게 소통하는 행위를 도와주는 공공시설이다. 이러다 보니 급변하는 미디어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요즘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 틱톡 등을 살펴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다. "10년, 20년 후에는 사람들이 어떤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할까? 과연 그때도 지금의 미디어 이용패턴이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이다.180여년 전 단방향 소통방식인 사진, 영화, 라디오 등이 출연했을 때 그 시대를 대표하는 미디어였다.인류는
모처럼 북적거린다. 차와 사람이 뒤엉킨다. 인도는 노점상이 차지하고 사람들은 차도로 다닌다. 허리가 구부러진 어르신도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도 차와 뒤엉키어 위험천만이다. 누구 하나 안전을 지도하는 사람도 없다. 스스로 살아나 거리를 빠져나가야 한다. 추석절이나 장날만의 풍경이 아니다. 날마다 그렇다.인도를 빼앗기고 차도를 걸어야 하는 주민들은 불만이 가득하다. '차를 못 다니게 하든지, 노점상과 적치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일방통행도 제안한다. 북적거림에 모처럼 활기를 띤 상점가와 다르게 걸을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