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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 출신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전병헌 “원내사령탑 1년… 국정원·거짓약속·불통정부와 악전고투”

2014. 04. 17 by 박명규 기자
▲ 전병헌 원내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원내대표는 1958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 휘문고와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육군학사장교 1기로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중위로 제대후 김대중 대통령 정책기획비서관과 정무비서관을 거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국가홍보처 차장을 역임했다. 17대 서울 동작구 갑에서 출마해 당선된 뒤 열린우리당 당 대변인과 원내부대표,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 의장을 역임했다.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천안 출신인 여당 거물인 서청원의원과 붙여 42.2%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당선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원내대표는 오는 5월 9일 원내대표 직을 내려놓을 예정으로 있다.

지난해 5월 15일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후 제1야당의 원내사령탑으로 숨가뿐 1년을 보냈다.

박근혜 정권 초기 국정 현안도 많았고, 그 어느 정권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한 해였다.

전 원내대표가 임기를 마무리할 시점에서는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합당을 하는 등 역대 어느 야당 원내대표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1년간의 원내대표을 맡으며 겪었던 일화와 그동안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박명규기자 mkpark0413@cctoday.co.kr




-고향이 충남 홍성이어서 충청권 출향인사 모임인 백소회도 자주 참석한다. 충청도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저는 충남 홍성 구항에서 태어났고, 외가는 충남 예산 삽교였다. 어린 시절 서울로 이사와 동작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방학 때면 항상 친가와 외가가 있는 충남으로 내려가 보름씩 머물다 오곤 했다.

손이 크신 외할머니는 장이 서는 날이면 동네 거지들까지 부침개와 김치, 밥 등 음식을 아낌없이 베푸셨고, 알뜰하신 외할아버지는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나가서 나락을 주을 정도로 당신이 흘린 땀방울과 삶에 대한 사랑이 크신 분들이었다.

충청도에는 어린 시절 외가에서의 아름다운 추억과 외할머니의 넉넉함과 외할아버지의 성실함이 고스란히 베어있다. 실제 고향이기도 하고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충청도에 애정이 없을 수가 없다."

-대학 졸업 후 1기 육군 학사장교로 입대해 중위로 전역한 후 평범한 직장인 대신 정치인의 삶을 선택했다. 계기가 있다면.

"저는 고려대에서 정치외교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고대 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대학 시절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저는 집안 생활비와 동생의 학비를 벌면서 미국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학비가 어느 정도 마련되었을 즈음 정치권에서 실습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당시 대선 열기가 한참 달아오르고 있었고 노태우 후보가 유력한데도 김대중 후보와 김영삼 후보는 결별을 선언한 상태였다. 양 김이 결별한 상태에서 결과는 불 보듯 뻔했으나, 김대중 후보가 걸어온 길과 대의명분이 저의 이상과 일치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평민당을 택했다.

대선이 끝나고 당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던 조세형 위원장으로부터 평민당 편집국장 직을 제안받았다.

유학준비가 끝나 7곳 대학으로부터 9월 입학통지서까지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지만 제1야당 기관지 편집국장은 대학시절부터 꿈꿔오던 일이었기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시 나이 29세였다. 이후 평민당, 신민당, 민주당을 거치며 최연소, 최장기 편집국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동안 여당시절에는 청와대에서, 또 야당의 주요 당직을 맡으며 여당과 야당을 모두 겪었다. 야당 정치인과 여당 정치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

"여당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민생을 챙겨야 할 무한 책임을, 야당은 정부·여당의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기본 책무다. 지금은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인지 모를 지경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민생은 '나 몰라'하고 대통령 심기(心氣)만 살피면서 민생법안과 약속실천법안들이 무더기로 후퇴하거나 좌초되었다. 양보도, 타협도, 대안도 없는 막무가내 여당과 시급한 민생 해결과 약속이행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야당,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 해에 야당 원내대표를 맡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채동욱 검찰총장 사건을 비롯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복지공약 후퇴 등에 대해 국민이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쓴소리도 있다.

"저의 임기 1년은 박근혜 정권의 '민주파괴·약속파기의 1년'이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사건 등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무상진료 등 대통령의 복지공약 파기가 일상화됐다.

거짓말정권, 불통정권에 맞서 악전고투했지만, 국민의 기대에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송구스럽다.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민생을 살리고 약속을 실천하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대 과제이다. 비록 제 임기 내에 국민이 원하는 성과를 못내는 아쉬움은 있지만, 평의원으로 돌아가도 제 소임에 게을리 하지 않겠다.”

-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에 이어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 등 불과 한 달여 사이에 정치적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원내대표로 고민과 갈등, 말 못할 막후 협상 등도 많았을 텐데,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놓는다면.

"여당의 생떼와 막말, 말바꾸기 둥 이중적 태도가 가장 힘들었다. 기초선거 무공천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임에도 새누리당이 앞장 서 공약을 파기했다.

방송법은 여야가 합의해놓고 일방적 말바꾸기로 발목을 잡고 있다. 핵방재법은 2년여 동안 손 놓고 있다가 미처리 핑계를 야당에게 덮어씌웠다. 이런 상황은 아마 한국정치사에 전례 없는 일이다. 더욱 힘든 점은 새누리당이 실제로 결정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협상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대놓고 청와대 지시가 없어 협상불가를 밝히기도 했다. 결정권한이 없는 협상파트너를 마주보고 있어야 하는 것 정말 힘들었다. 이 자리를 빌어 박근혜 대통령의 여당 장악, 중단하길 바란다."

-여당 협상파트너인 최경환 원내대표와는 애증관계일 텐데, 정치인 최경환과 인간 최경환을 평가한다면. 또 지난 1년간 막후 협상과정 에피소드가 있다면.

"최경환 원내대표는 유머도 있고, 인간미 넘치는 분이다. 원내대표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으면 더욱 좋았을 건데 안타깝다. '애(愛)'는 있는데, '증(憎)'은 없다. '정(情)'도 쌓였다.

당 원내대표로서 청와대 지시로만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나름 고충이 많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6월 국정원 국정조사를 할 때 일이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국정조사를 수용하는데 막후에서 최경환 원내대표의 역할이 컸다. 국정원 국정조사를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적극 설득해서 국정조사를 할 수 있었다. 임기 초반까지만 해도 국정원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야당에 협조를 잘해 주었다. 그 이후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6·4 지방선거와 20대 총선,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민생과 민주주의를 위한 변함없는 열정과 노력 꾸준히 보여드리겠다. 민생을 살리고, 약속을 지키고, 새정치를 실천하는 모습 반드시 보여드리겠다. 준비된 대안과 능력 국민이 확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고 국민의 속으로 들어가겠다. 대안적 비판자로서, 국민의 대변자로서 민주주의와 민생을 챙겨가겠다. 믿고 지켜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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