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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익 한국외교협회장 1972년 창립 비영리 공익법인, 국제문제 참여·외국 교류협력, 봉사단체 등 제휴기회 늘릴것 오지 청소년 지원책 개발 주력, 통일 위한 비전외교 추진해야

정태익 “국제이슈 민간부문과 동행… ‘제2의 반기문’ 배출 희망”

2014. 02. 20 by 박명규 기자
▲ 정태익 한국외교협회장이 주요 역점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외교협회 제공
정태익 한국외교협회장은 지난 1969년 제2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주이집트대사를 비롯해 주이탈리아대사,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하는 등 30년 넘게 우리나라 외교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장본인이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경남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와 단국대 석좌교수를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외교관으로 국가를 위해 평생을 바친 그에게 그동안의 에피소드와 격동의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 정부가 나가야할 고언을 들어봤다.


-지난달 제20대 한국외교협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협회에 대해 일반인은 생소하다.

"한국외교협회는 국민이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외국과의 교류협력을 증진하고,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 1972년 설립된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협회는 창립 이래 정일권 총리, 박동진 장관 등 역대 회장들의 지도와 회원의 적극 참여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서초구 우면산 기슭에 협회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회원은 외교부 현직 및 퇴직 공무원 2000명으로 구성돼 있다. 외교부 현직 회원은 국사에 전념해야 함으로 협회 활동은 주로 퇴직회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회원들은 대학과 고등학교 등 교육기관과 사회단체에 대한 강연, 국제문제 자문에 응하고, 국내외 국제관계 행사에 참여하며,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고 등 외국 외교협회와 교류하는 등 국제 우호협력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또 외교협회는 외교전문학술지를 계간 발행하며, 제 취임 후 '외교광장' 제하 외교정책 시리즈도 매주 발간할 계획이다."

-협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계획인가.

"무엇보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한국외교협회를 만들어갈 포부를 가지고 있다. 우리사회와 국민과 함께 관심 주제에 적극 동참하고, 민간부문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싶다. 이를 위해 사회와 봉사, 문화, 스포츠단체 등 민간부문 및 우리 기업과의 제휴기회와 사업을 개발해 실천해 나가겠다. 특히 국제이슈에 대한 정보와 접촉 기회가 희박한 오지와 낙도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특별 순회강연과 지원책을 강구해 제2의 반기문총장이 나올 수 있는 희망사업을 개척하고자 한다."

-많은 젊은이의 선망의 대상이 외교관이다. 외교관이 된 동기와 외교관이 어떤 직업인가.

"세계를 무대로 대한민국의 안전보장과 경제발전, 국민의 복지, 나아가서 민족통일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는 외교관이야 말로 제가 일생을 바쳐 보람차게 일할 수 있는 천직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서슴없이 36년간 외교관으로 일관되게 봉직하다가 2005년 말 퇴임했다. 훌륭한 외교관 1명이 군대의 일개 사단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외교관의 행동 여하가 국가와 민족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서양에서 귀족출신이 외교관을 담당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외교관은 가장 빼어난 수재들로 충원되고 있다. 이러한 우수한 외국 외교관과 대적하기 위해 우리 외교관도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해 나가야 한다. 만약 외교관을 화려한 사교와 연회의 직업으로 생각하신다면 큰 오해다. 외교관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한의 충성과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봉사직이다. 외교관의 임지는 선진국보다 말라리아와 같은 풍토병이 창궐하고, 물자가 부족한 후진국 근무의 경우가 더 많다. 저 개인적으로는 1943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고위공무원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국민학교를 옮겨다니다가 청주중학교를 거쳐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서울법대에서 국제법외교학회의 회장직을 맡았다. 대학 재학시절에 일본과 국교를 맺기 전인 1963년과 1964년에 걸쳐 일본을 방문해 국제학생회의(ISA)가 주최하는 국제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각국의 학생 대표들과 교류하였던 경험이 외교관이 되는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외교관이 된 후 대략 몇 개국에서 근무했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국가나 인물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이 일어나 커다란 혼란과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다. 당시 외무부도 통역장교출신을 외교관으로 채용하게 돼 외교관의 등용문인 외무고등고시가 1962년에 폐지됐다. 저는 서울법대 졸업 후 공군장교로 복무 중 외무고등고시가 3급 외교관 채용시험으로 부활됐다. 1969년에 시행된 외교관시험에 공군현역장교로 합격해 1970년 만기 전역 후 외교관이 됐다. 외교부에 입부한 후 미국과 일본, 러시아, 이집트, 이탈리아, 라이베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 근무했다. 이집트와 이탈리아, 러시아에서는 전권특명대사로, 말타, 이스라엘, 백러시아, 아르메니아, 죠지아,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겸임대사로 봉직했다. 모두 9개 나라에서 한국을 대표한 셈이다.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국가와 인물은 역시 영토가 세계 최대국가인 러시아이고 인물은 푸틴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대통령직을 2번 연임하고 총리로 물러섰다가 3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돼 러시아를 통치하고 있다."

-수많은 외교비사가 있을텐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기 전 2001년 7월 외교안보연구원장 발령을 받았다.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 임명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98년 초부터 2000년 말까지 주이태리 대사로 재직하는 동안 김 대통령께서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이태리를 방문했다. 당시 김 대통령은 참피 이태리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교황 요한 바오로2세도 알현했다. 교황의 축복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라는 인식을 한 김 대통령이 전대 미문의 이태리 방문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룬 데에는 주이태리 대사관의 역할이 컸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김 대통령은 이태리 정부의 수상과 교황에게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유도하는 일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김 대통령의 이태리 방문 이후 실제로 람베르토 디니 이태리 외상이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적극 설득하는 후속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우리 대통령 사상 초유의 이태리 방문은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역사적 사건의 토대가 된 셈이었다.”

-그동안의 공직생활 중 가장 큰 업적으로 생각하시는 사업이 있다면.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외교비서관으로 재직시 이룩한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이다. 제가 주 카이로 총영사로 1993년 부임해 1995년에 성사시킨 한·중 이집트 수교와 주 러시아 대사로 재직시 달성한 한·러 채권채무문제 해결 등을 꼽을 수 있다."

-최근 한·중·일 동북아 관계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나가야할 외교방향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한·중·일간 과거사 인식과 영토문제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120년 전의 동아시아 질서는 대륙의 강국인 러시아의 남진정책과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과 미국의 대결을 기본축으로 하는 질서였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아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올라서기 위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앞장섰다. 일본의 희생에 대한 대가로 미국과 영국이 내준 것이 대한제국이었다. 2014년 갑오년은 중국과 일본간에 공수의 대상이 바뀌어 영토문제를 필두로 대결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항하기 위해 아시아로의 재균형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난에 봉착한 미국은 일본의 역사도발을 막는 균형자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현재 동북아 대립의 근간은 중·일간의 이해가 상충한다.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이라는 실용을, 일본과는 안보와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가 처형되기 전에 제창한 한·중·일간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담보할 동양평화론을 구현하고 21세기에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비전외교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서울= 박명규 기자 mkpar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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