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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행자부 지방분권연구단장

[출향인사칼럼]모순의 패러독스

2003. 06. 24 by 대전매일

어떤 방패라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이라도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동시에 있을 수는 없다. 만일 있다면 우리는 이를 모순이라 한다. 철학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가지고 논리적인 유희를 즐기곤 한다.

한 크레타인이 말했다.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크레타인은 아무도 참말을 말하지 않습니다."

크레타인이 말했으니 이 말은 참말이 아닐 것이요, 거짓말이면 크레타인은 참말을 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 크레타인의 말은 참말인가, 아닌가? 이러한 순환모순의 논리는 우리를 혼돈의 재미에 빠지게 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세상의 온갖 악이 쏟아져 나왔다. 뚜껑을 닫자 맨 밑바닥에서 조그만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꺼내 주세요. 나를 꺼내 주신다면 모든 악을 이겨 낼 수 있답니다."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것은 희망이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우리에게 닥치는 어떠한 악과 시련도 견디어 내며 살아간다. 희망이야말로 어둡고 막막한 이 세상을 비춰 주는 한 줄기 등대 빛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온갖 악(惡)만이 가득 들어 있는 판도라의 상자에 왜 선(善)인 희망이 끼어 들어 있었을까?

기실은 희망이야말로 악 중의 가장 흉악한 악이었다.

만일 희망이 없었다면 인간은 못 견딜 시련과 고통이 찾아왔을 때 그만 생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악은 인간을 오랫동안 괴롭히거나 어쩌면 세상에 발붙일 일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희망으로 인해 우리는 없어지지도 않을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생을 포기하지 못한다.? 희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현될 확률은 얼마나 희박한 것인가? 희망이야말로 우리를 고통 속에 빠뜨리는 악의 원흉인 것이다. 패러독스(逆說)다.

우리는 지금 모순의 시대, 혼돈의 사회에 살고 있다. 갑작스런 가치관의 전도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

왼손에 선택과 집중, 오른손에 균형발전이라는 창과 방패를 들고, 반미(反美)구호의 박스 속에서 국방비 증액을 끄집어 낸다. 경로와 경륜의 미덕은 지금도 유효한 덕목인지 궁금하다. 더 많은 봉급과 더 많은 휴일을 보장하면서 국제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하고, 자원이 없는 우리가 금쪽같이 아껴 주어야 할 과학기술인과 기업인들을 박대하면서 세계 최고의 첨단기술과 산업을 키우고자 한다. 같은 공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어느 쪽도 버릴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순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순됨은 오류이고 악인가? 모순은 모순일 뿐, 악은 아니다. 오히려 모순이 있어 이 세상은 발전할 수 있다.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은 악보상의 음표가 그려 내는 산물이 아니라, 음표와 음표 사이의 공간, 그 띄움이 있기 때문이다. 소리를 머무르게 하는 음표의 여백, 그 사이로 인해 소리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모순은 덮어 두지 말고 극명하게 드러내 놓아야 한다. 처절한 혼돈 속에서만이 정제된 논리가 찾아진다. 우리는 지금 이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며, 우리 사회의 DNA를 찾아내야 한다. 음표에 사이가 없을 때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공백의 생략을 상정해 보아야 한다. 상하좌우, 동서, 남북간의 모순을 명징하게 부각하여 정련된 가치관을 얻어 내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 시대에 명료하게 규명하여야 한다. 혼돈 속에서도 결코 자기중심을 잃어서는 안된다.우리는 모순을 역류시켜 바로 지금을 역사의 긴 안목에서 볼 때 안정된 길잡이를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약? 력>

▲1956년 대전 출생 ▲서울 보성고, 한국외국어대학 법학과 졸 ▲연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동경대 법학석사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 제도과장 ▲행정자치부 실업대책과장, 복지과장 ▲충남도 기획관, 경제국장, 정책관리관, 안면도 꽃박람회 조직위 운영본부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역임저서: 공무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상: 해군참모총장상, 감사원장상, 대통령상, 홍조근정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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