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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학번 늦깎이 대학생 신주철 어르신 전쟁으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공부 환경 탓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 ‘관심’ 가족 수입일정액 10년간 장학금 후원 나이 들다보니 고생하는 노인들 보여 봉사하고 싶어서 사회복지사 되기로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뒤 한남대 입학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간호사와 협력 행복동산 만들어 사회 환원하는게 목표 노인들 신체·정신적 만족 느끼게 할것 기말고사 잘 치르고 동기들과 잘 지내 하고자하는 의지·꿈 있다면 도전 가능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 가장 빠른것

"이웃 돌보는 일 보람차… 남은 생 봉사하는 삶으로 살고 싶어"

2022. 06. 18 by 한유영 기자
▲ 신주철 어르신.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제공
▲ 신주철 어르신이 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스미싱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충청투데이 한유영 기자] 신주철 어르신의 트레이드마크는 중절모와 턱수염이다. 옛 어르신, 훈장님 같으면서도 친근한 모습으로 동네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에선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어떤 사업의 참여자로 누굴 하면 좋을까?"를 떠올렸을 때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신주철 어르신이라고 한다. 어려운 이웃과 노인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웃에게 따뜻한 관심과 손길을 내미는 데 앞장서고 있어서다. 올해는 사회복지학과 22학번으로 입학하며 사회복지사의 꿈에 성큼 다가섰다. 진정한 사회복지의 실현의 꿈을 안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신주철 어르신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젊은 시절부터 나눔 실천을 꾸준히 해 오셨다고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얼마 후 6·25 전쟁으로 21살 터울 큰형님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으셨다. 전쟁으로 상처도 있었고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 대학을 읽은 후 사서삼경까지 한학을 공부하는 열정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배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젊었을 땐 공부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환경이 어려워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갔다. 결혼 이후에는 와이프와 상의 끝에 가족 수입의 일정액을 모아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기로 했다. 분기별로 지방원호청(현 보훈청)을 통해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10여년 이상 후원을 이어왔던 것 같다. 주변에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워 조용한 후원을 해 왔는데 어느 날 원호청장(현 보훈청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게 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어쩌면 봉사 활동이나 이웃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 같다. 동네 통장일을 보면서 관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시작했는데 어느 새 이 일이 취미가 될 정로 이웃을 돌보는 일이 보람되게 느껴졌다."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을 통해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복지관과 어떤 활동을 함께 하고 있나.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의 추천을 받아 시니어신문이라는 인터넷 신문 기자로 활동했었다. 서울에 가서 교육도 받고 직접 취재도 다녀왔다. 그 당시에 대전 변동시장 뒷골목에 위치한 지하 1층 여덟 평 정도의 넓이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팔순 이발사를 취재했었다. 단돈 5000원으로 이발을 해주는 곳이었는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이가 들었어도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에 열정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멋지지 않은가.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관련 강사로도 활동했다. 노인들이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경우가 많으니 예방차원에 중점을 두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하고 있다."

-올해는 또 새로운 도전을 하셨다. 22학번 새내기 대학생으로 입학했는데, 늦게라도 대학입학에 도전한 이유가 있는지.

"1949년생, 올해로 만 73세가 됐다. 한 해 두해 나이를 먹다보니 주위 건강했던 선·후배들이 여러 질환으로 고생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게 됐다. 젊었을 때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마음이 갔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노인들에 눈길이 갔다. 나이를 함께 먹어가는 입장이지만 내 남은 생을 이들에 봉사하는 삶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게 벌써 5~6년 전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올해 대학에 입학하기 까지 나에겐 특별한 학력이 없었다. 그런데 사회복지사가 되려면 필수로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더라. 그래서 학력에 관계없이 볼 수 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먼저 취득했다. 이후에는 고등학교 졸업 학력도 만들어놓고 현재 재학 중인 한남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꿈이 있다면.

"가진 게 많지는 않지만 지금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해서 이걸 씨앗으로 파라다이스, 천국 같은 노인복지 시설을 만드는 게 꿈이다. 노인성질환으로 고생하시는 어르신들에게 지상 낙원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최소 5000평 이상의 부지와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호사 등 50명 이상의 직원들과 협력해 ‘행복동산’을 만들어 사회에 환원 시키는 게 최종 목표다. 현재는 꿈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면 된다. 73세 나이를 잊고 노인복지를 배우고 연구하기 위해 한남대 사회복지학과에서 학생으로 공부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많이 향상 됐지만 노인시설은 특히 그 마음까지 돌봐주는 건 부족하지 않나 생각했다. 앞으로 만들 시설은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노인들이 몸은 물론 정신적으로 만족감을 크게 느낄 수 있도록 시설을 꾸려나갈 생각이다."


-어르신처럼 늦게라도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장 늦었다라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문구가 기억난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일흔도 넘은 나이에 대학에 간다는 게 이상할 수 있다. 30~50대에는 나이를 먹어도 마음과 몸이 항상 청춘으로 느껴졌었다. 6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마음은 청춘이지만 몸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최근에도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검사를 받았지만 일상생활이나 학업을 수행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얼마 전 진행된 기말고사도 잘치뤘고 22학번 동기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 하고자 하는 의지와 꿈이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한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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