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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대창이용원 이종원 이발사 가난한 탓에 생활전선 뛰어들어 어깨너머 훔쳐 보며 기술 익혀 밤에 연습… 가위 잡고 실력늘어 철도관사 많았던 부촌 소제동 하루 평균 100명씩 손님 받아 입소문 타 천안·김천서도 방문 인근 고아원서 이발 봉사 활동 돈 없는 학생은 무료로 깎아줘 공로 인정받아 표창장 받기도 단골손님들 계속 일하라하지만 그만두면 집사람과 여행 갈 것 소제동 재개발로 새롭게 바뀌길

"이발만 60년… 추억 아쉽지만 집사람과 여행 다니고 싶어"

2021. 11. 21 by 박현석 기자
▲ 대창이용원 이 종 원 이발사. 사진=박현석 기자

[충청투데이 박현석 기자] 대전 100년 역사를 품은 동구 소제동. 골목길 양쪽에 드리운 나무 전봇대가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이곳에 놓이기 시작하면서 1905년부터 철도관사촌을 비롯, 당시 대전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잡으면서 ‘대창이용원’도 이곳 소제동 골목 어귀에 자리를 잡았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원도심이 쇠퇴하면서 소제동은 늙어갔지만 평생 이 길을 걸어온 이종원 이발사(85)의 가위질은 세월도 싹둑 잘라내면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이곳은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이발소도 머지 않아 문을 닫을 예정이다. 반세기동안 외길인생을 걸어온 이종원 이발사를 만나 그동안의 소회를 물어봤다.

-이발사만 60년, 반세기를 넘었다. 이발사를 시작한 계기가 있다면.

"어린시절 가난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중학교 입학하고 2주도 안돼 그만둬야 했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그길로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 철공소에 취직했지만 겨울에 춥고 쇠를 옮기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만 두고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이 이발소였다. 당시 깔끔한 하얀 가운과 겨울철엔 난로가 있어 따뜻했다. 그 길로 이발소의 인연이 시작됐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바닥 청소부터 시작해서 머리감기, 면도까지 2~3년정도는 한거다. 어깨너머로 훔쳐보면서 머리깎는 기술을 눈으로 익히고 늦은 밤에 연습하곤 했다. 본격적으로 가위를 잡으면서 실력도 쑥 늘었다. 스카웃 제의도 받아 2~3번 이직했다. 그러다가 군대를 갔다와서 본격적으로 내 가게를 차릴려고 면허시험도 봤고 한번에 붙어 면허증을 땄다. 신혼생활 1년쯤 됐을 때 집사람이 곗돈을 타서 이발소를 차렸다."

-이곳 소제동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처음 이발소를 차린곳은 삼성동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당시 논밭이 많았던 변두리였고 지금 이곳은 철도관사가 많아서 인구도 훨씬 많았다. 여기가 당시 부촌이었다. 대흥동이 충남도지사 관사가 있었던 곳으로 제일 좋았고 법원, 검찰청이 있던 선화동이 두 번째였다. 여기는 철도 관사가 많아 3번째로 좋았다. 60년대 당시 철도 관련 종사자들이 이곳 소제동에 90%이상이 살았다. 가족들까지 포함해 대략 20만명 정도로 기억한다. 기관차, 객관차 등 7~8개 사무소가 있었고 한 사무소당 300명정도가 근무했다. 철도청장은 물론 국장, 대전역장들, 과장급, 계장, 5급 이하 일반직원들까지 당시 사람들이 많아 손님들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젊었을 때 시작한 이발소였고 당시 손님들과의 추억이 서린 곳이라 다른곳으로 가지도 않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당시 하루 손님은 어느 정도였나.

"지금은 학생들이나 여자들은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깎지만 그 당시 미장원은 파마만 했다. 그렇다 보니 예전에는 젊은 학생들이나 여자들도 이발소의 주 고객이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가게 앞길이 대전상고, 동아공고 학생들의 통학길이였기도 해서 학생들도 많이 왔다. 하루 평균 100명의 손님을 받았고 학생이 30~40명, 일반손님 20명, 철도종사자 20명 정도였다. 지금은 나 혼자지만 당시엔 의자 4개에 직원 4명을 뒀다. 그 중 한명은 머리만 감겨주는 직원이었다. 그때 당시는 커트가 20원정도였고 직원들 월급 다 주고 나면 한달에 10만원정도 들어왔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3~4만원할때였다.

-주로 어떤 손님들이 찾아왔나. 기억에 남는 손님은?

"입소문을 타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멀리서는 천안, 김천서도 찾아올 정도였다. 고위직 공무원들도 많이 찾았다. 동구청장, 국회의원은 물론 철도청장도 단골이었다. 이들도 여기와선 머리를 숙였다. 머리를 감을려면 숙일 수밖에 없지 않냐(웃음). 철도청 인사국장도 이 동네에 살고 단골이었는데 일반 철도청 직원들은 쉽게 만나기 어려우니깐 한 직원이 나한테 와서 머리를 깎으면서 인사국장 집사람을 소개시켜달라고 했다. 당시 철도청 관할이 천안부터 김천까지라 여기서 사고가 나면 대전에 있는 사람이 멀리 제천까지도 보낼 정도로 인사국장에 힘이 쎘다. 몇 번 집사람을 통해 인사국장 아내와 만남을 자리를 주선해줬고 입소문이 나면서 이런 부탁도 많이 들어왔다. 기억에 남는 학생들도 많다. 당시 대전고 2학년 한 남학생이 항상 나한테만 머리를 깎았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 이야기도 많이 해줬다. 난 공부를 잘했지만(중학교 입학시험 당시 480명 중 48등을 했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했다. 기왕 공부할거면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교를 가보는게 어떻겠냐고.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한다면 법대를 가라고 독려했다. 그렇게 그 학생은 졸업하고 소식이 없더니 어느날 어른이 되어 찾아왔다. 군대갔다온 이후 서울대 법대를 갔고 고시를 합격해서 대구지검 검사로 발령났다며 감사인사를 하러 찾아온 것이다. 그 학생이 항상 내가 해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더라."

-가난을 겪어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도 남달랐다고 하던데 어떤 사회봉사를 하셨나.

"지금은 내가 나이를 먹어서 못하고 있지만 옛날엔 이발소조합에서 인근 고아원에 머리깎아주는 봉사활동도 진행했다. 봉사활동이 있는 날이면 빠짐없이 참석해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줬다. 출석률도 내가 제일 높았고 제일 먼저 도착한 것도 나였다. 이런 공로로 당시 대전시장 표창장도 받았다. 돈이 없는 어려운 학생들도 가게에서 무료로 많이 깎아줬다. 또 예전에는 요양원이란게 없어서 몸이 아프신 어르신들이 돈이 없어 치료도 못받고 집에만 계신분들도 많았다. 형편 어려우신분들이 거동도 불편하시니 내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 이발도 해드렸다. 돈도 안받고 무료로 도움을 드리곤 했는데 그분들의 아들, 딸들이 찾아와서 고맙다며 뭐라고 갔다줬는데 계란 두줄묶음 같은 이발료보다 더 비싼걸 들고왔다. 계란 두줄보다도 감사하는 마음이 전해지면서 이 일에 대한 보람도 더 느꼈다."

-나이가 85세다. 건강은 어떠신지.

"3년전에 폐암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폐암3기가 진행중이었는데 당시 아들, 딸들이 이제 그만 일하시고 서울로 치료받으시러 다니시면서 쉬라고 했다. 계속 일하면서 대전에서 치료받으면 병이 커진다고 걱정했다. 그런데도 나는 일하면서 계속 대전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일이 좋다보니 도저히 가위를 못 내려놓지 못했던 거다. 그때는 머리도 빠져서 모자를 쓰고 일할정도였는데 손님들과 계속 이야기하면서 일을 하다보니 병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보니 폐암도 완전 말씀히 극복하게됐다. 병원 의사도 놀라더라. 그때 내가 일을 그만두고 드러누웠다면 죽을날만 기다렸을 텐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수있어서 암도 극복한거다."

-이발소가 위치한 이곳은 재개발도 진행되고 있는데 향후 계획은.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리 이발소도 사업구역에 위치해있는데 철거직전까지는 운영할 생각이다. 나이가 많지만 암도 극복하고 건강해서 단골손님들은 놀면 뭐하냐며 다른곳으로 옮겨 계속 일하라고 한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제 그만 일하라고 한다. 삼남매도 다 대학까지 졸업시켜 다 키웠고 이제 이발소를 그만두면 쉴 생각이다. 우선 집사람과 여행을 다닐려고 한다. 해외여행이라곤 칠순, 팔순때 중국, 동남아시아를 가본게 전분데 이제 비행기도 오래타기가 걱정스러워 국내 곳곳을 여행다닐 계획이다. 그동안 60년 가까이 추억이 서린 이발소가 없어지는게 아쉽지만 이곳도 너무 낙후된 동네다 보니 재개발을 통해 새롭게 바뀌길 기대한다. 이곳 주민들은 오랜 단골이며 나의 이웃이기 때문에 노년을 좋은 환경에서 사시는게 좋지 않나."

박현석 기자 standon7@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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