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주 청주시 상당구 지적팀장
[아침마당]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조명이 켜지고 벤치의자에 앉아 자작시 ‘얼굴’ 낭송으로 콘서트가 시작됐다.

지난 4월 우연히 필자의 눈에 들어온 박인희 콘서트.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지 않았다. 아!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어릴 적 언니 방에서 흘러 나왔던 노래를 들으며 알게 되었고, 대학시절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져 다시 녹음해 듣고 또 들었던 노래들. 언젠가 성인이 되면 박인희 콘서트에 꼭 가봐야지 생각했었다. 공연장에 가기 전에 '박인희 컴백 콘서트 기자간담회' 동영상을 검색해 들어 봤다. 그의 이야기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이 있어 적어본다. 갑작스런 은퇴에 대한 질문에 답변 대신 자신의 수필집 ‘우리 둘이는’의 한 문구를 읽었다. 과로 속에 가수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자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강요받게 됐다. 추측으로 도마 위에 난자당하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유명인 뒤에는 내면의 붕괴가 컸다. 왜 노래를 했나. 노래가 좋아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영원히 살아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돌연 은퇴한 박인희가 오랜 시간이 흘러 컴백을 결심한 이유는 팬 때문이었다. 그는 10여년 전 어머니와 미국 산타모니카 해변을 거닐다 우연히 한 팬을 만나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보았단다. 대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왔는데 고등학교 때 박인희가 하던 방송과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잊지 못하는 노래로 그의 노래가 듣고 싶어서 한국에 연락해 새 노래가 나온다고 하면 LP를 서너 장씩 주문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분실하거나 깨질까봐 똑같은 음반 서너 장씩을 가지고 있는 거였다.

박인희는 "가수 복귀를 고민하던 시기인 지난해 공연 관계자로부터 제 컴백을 기다리는 팬클럽이 있다는 말을 듣고 복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주 오랜만에 봄 소풍 전날의 설렘과 기대감,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공연장을 향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공연장에서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추억과의 재회를 기다려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세월의 흔적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노래는 차분하고 청아한 음색 속에 이젠 세월의 기품이 묻어있었다. 내 젊은 날의 향수. 그의 노래를 듣는 동안 추억과 재회하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가가 촉촉이 젖어 왔다. 젊은 날의 추억이 가슴으로 느껴지고, 젊음의 추억을 이젠 만들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인한 서글픔과 그것을 느끼게 해주는 노래를 듣는 행복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연이 끝나고 가슴 속에 뭔가 충만함을 갖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연이든 스포츠든 잠시 나이를 잊고 과거와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문화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때론 누군가의 삶에 큰 위로가 되어주고, 때론 누군가를 새롭게 꿈꾸게 하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더욱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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