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보다 마음이 먼저 쉬고 싶어 휴가를 다녀왔다. 이번 휴가의 제1수칙은 '내려놓기'였다. 생각을 내려놓자 욕심도 내려앉았다. 힘이 솟았다. 왜 진작 떠나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 없이' 떠난 여행에서 두 가지 복병을 만났다. 폭염과 모기였다. 폭염은 뼛속까지 열꽃을 피웠다. 처음엔 작은 발화였지만 점점 핏빛으로 덩치가 커졌다. 큰 몸이 습한 공기에 의해 산화된다는 건 충격적이다. 하물며 4.5㎜의 모기에게 온몸이 뜯길 땐 피가 말랐다. 그 작은 흡혈이 인간의 몸에 빨대를 꽂아 여름을 핥으니 경악스러웠다. 이들의 촉수는 여름 더듬이다. 그래서 더욱 깊고 아리다. 악어는 1년에 1000명을 죽이고, 뱀은 1년에 5만명을 죽인다. 그런데 모기는 1년에 100만명을 죽인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학을 떼다'라는 말 중 '학'은 모기가 일으키는 전염병인 말라리아를 뜻한다. 하지만 모기가 사라지면 세상은 '나아지거나 나빠지거나' 둘 중 하나다. 있어야 할 곳에 없음으로 인해 생태계는 '딸꾹질(hiccup)'을 하게 된다. 아, 이번 휴가는 모기의 딸꾹질이 아니라, 모기 때문에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다.

▶풀벌레 울음은 비명에 가깝다. 불나방은 제 몸 타는 줄도 모르고 가로등 불구덩 속으로 기꺼이 투신했다. 계곡의 푸른 수목 아래 있는데도 땀이 줄줄 흘렀다. 잠시라도 볕 있는 곳에 나오면 살이 탔다. 술에 취해 절멸하면 자는 듯, 죽은 듯 곯아떨어졌다. 폭염아래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이열치열하기도 했다. 사실, 열을 열로써 다스린다는 것처럼 곤혹스러운 짓도 없다. 한여름 허세다. 이열치한(以熱治寒)이 옳다. 여름음식의 포인트는 '얼리는 것'이다. 얼었다 녹아도 본연의 맛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몸을 얼리고 입을 열리며 폭염의 휴가를 오이냉국처럼 버텼다.

▶사가독서(賜暇讀書·책 읽는 휴가)를 생각했지만 책 한 권 읽지 못했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일에 치여 쉴 시간이 부족할 테니 본전(本殿)에 나오지 말라'며 짧게는 몇 달,길게는 3년까지 집이나 절에서 책을 읽도록 했다. 비용을 대준 것은 물론 음식과 옷까지 내렸다. 어찌됐든 호사를 누릴 겨를도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여름의 민낯'이 여전히 주변을 서성거린다. 가을은 저만치에 있다.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데 계속 염탐만 하고 있다. 어서 오라, 가을이여. 이 여름의 지독한 변주가 싫다. 충전의 여행이 오히려 몸을 방전시켰으니 지겹구나. 여름아.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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