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전지역본부장
[아침마당]

대전 유성구에 살고 있는 9살 이 군은 염색체 6번 미세결실 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다.

이 질환은 우리나라 1명, 세계적으로 40여명이 가지고 있고, 워낙 드문 희귀병이다 보니 건강보험 산정특례 대상자에 해당되지 않아 희귀난치병질환에 해당되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랜 투병기간으로 발생한 고액의 병원비와 재활치료비는 이 군의 가족을 빚더미에 오르게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이 군의 누나는 한창 부모에게 어리광 부릴 나이이지만 아픈 동생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습관이 들어 착한아이증후군을 의심받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 군 어머니의 심신상태가 급속도로 안 좋아지자 아이 아버지는 15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아픈 것이 제 탓 같아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중증 질환,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는 경우 부모들은 고액의 치료비 부담과 장시간 아이의 간병으로 일자리를 놓치게 되고, 치료 종료 이후에도 지속적인 치료비 부담으로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과 같이 다양한 가족문제를 야기한다.

우리와 소득수준이 비슷한 대만은 20여년 전부터 어린이들에게 무상의료제도를 도입했고,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아이들이 여섯 살까지는 전적으로 의료 책임을 진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증 질환자의 치료비를 공공재원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병마에 걸려 오랜 시간 싸우는 것이 그 아이의 잘못인가? 아니면 부모의 잘못인가? 부모라면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가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질병에 걸리고, 건강하게 지내던 아이가 알 수 없는 희귀병에 걸리는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큰 병에 걸린 아이의 치료비 중 상당 부분은 가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추진연대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국민건강보험의 누적 흑자 총액은 16조 6000억원이며 매년 4조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15세 미만 아동이 한 해 병원비 명목으로 가정에서 지출하는 금액은 총 6조 3937억원 규모다. 이중에서 개인이 부담해야하는 금액은 총 2조 5114억수준이며, 통원치료비를 제외하더라도 입원치료비 전액 보장에 소요되는 예상 비용은 국민건강보험 흑자 총액의 3% 수준인 5000억원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납부하는 국민건강보험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 국민이 동일하게 578원의 보험료를 나누어 납부하면 780만명의 아동들의 입원치료비를 국가에서 보장할 수 있게 된다. 1991년 대한민국이 가입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에는 ‘어린이는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고 차별받지 않으며 고유한 생명과 발달을 보장받을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 협약에서는 어린이를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본다는 것이다. 아이의 생명권은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기본권이다.

어린이들이 질병으로부터 고통받지 않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고, 가정에서도 아이가 아픈 것으로 생계에 위협을 받지 않는 사회적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무조건적인 혜택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기회균등의 상태를 주자는 것이다. 제도와 정책 개선을 통해 아이의 생명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을 많은 시민들이 자각해야 하며 함께 해결 방법을 모색해 나가길 바란다.

아이가 아픈 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는 아버지의 고백에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탓입니다' 라고 외치는 대한민국 사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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