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산 유성온천역장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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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 대학 새내기시절 경영학 첫 수업시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강단에 복귀한 교수님은 참고서적이라며 칠판에 10여 권의 책을 적었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는 두 명의 저자는 피터 드러커와 앨빈 토플러였다. 피터 드러커는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며 경영학 교과서를 비롯해 이미 수십권의 저서를 냈다. 당시 74세의 노령임에도 왕성한 집필과 연구에 몰두했다.

50대 중반의 토플러는 70년에 ‘미래쇼크’를 출간한 데 이어 80년에 ‘제3의 물결’을 펴내 미래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교수님은 토플러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기보다 학생들이 직접 사서 읽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토플러는 제1의 물결(농경시대), 제2의 물결(산업화 시대)에 이어 제3의 물결(지식정보화시대)이 도래했다고 설파했다. 그의 혜안대로 컴퓨터와 정보통신에 기반한 인류의 미래 모습은 상당 부분 현실화됐다. 이후 ‘권력이동’(1990년)과 ‘부의미래’(2006년) 등 그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서점에서 구입해 읽었다. 매번 그의 탁월한 통찰력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미 내 눈 앞에 펼쳐진 미래를 잘 준비하지 못한 한 개인의 나약함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토플러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0여 차례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일반 강연도 여러 번 가졌다. 故 김대중 대통령이 감방에서 ‘제3의 물결’을 읽고 크게 감명받았다고 밝힌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정부가 ‘지식정보화시대’를 강조한 것도 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정부는 그에게 한국의 미래를 위한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다. 2001년 6월 110쪽 분량의 ‘위기를 넘어서 : 21세기 한국의 비전’ 보고서를 낸 그는 “한국 산업화모델은 더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식기반 경제로의 전환이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의 조직개편과 건강관련 서비스, 바이오 기술(BT)의 적극적인 투자, 구시대적 교육체제 개편을 주문했다. 특히 교육에서 “한국의 교육체제는 반복 작업하의 굴뚝공장체제에 기초했다”면서 학생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언제든 적응할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록 15년 전의 보고서이지만 지금 다시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철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

토플러는 어록을 많이 남겼다. “지식기반경제로의 전환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한다”, “한국학생은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21세기 문맹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변화는 인생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인생 그 자체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등 그는 인터넷, 휴대전화, 카메라폰, 휴대용 모니터 등의 기술이 과거의 삽이나 괭이만큼이나 미래 인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확히 제품명을 말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 출시 수년전에 그 존재의 출현을 예고했다.

지난달 27일 토플러는 87세를 일기로 미국 LA 자택에서 숨졌다. 그는 ‘부의미래’ 한국어판에 ‘한국의 다음 세대-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라고 서명할 만큼 우리 젊은이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헬조선, 흙수저로 좌절하는 지금의 한국 청년세대들에게 토플러는 어떤 위로와 응원의 말을 남겼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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