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별안간 사라진 문서 1만5천개...불한당 해커에 당했다

▶우린 다리(교량)가 무너져도, 항공기가 추락해도, 건물이 무너져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불운이 생겨도 '나'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아, 멀쩡했던 다리가 자신이 지나갈 때 무너질 리 없다. 아, 평온했던 비행기가 자신이 탔을 때 떨어질 리 만무하다. 어찌 살아왔는데, 얼마나 고생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불행이 오겠느냐며 자조한다. 무조건 '나'는 안전하고 '나'는 위험하지 않다고 철석같이 믿는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덜컹거리고, 다리가 휘청거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깨닫는다. 아! '나'에게도 불행은 찾아오는구나. 그 불운이 '내'것이었고 그 불행 또한 '내'것이었다고 통탄한다.

▶사무실 컴퓨터가 랜섬웨어(ransom ware)에 당했다. 랜섬웨어는 ransom(몸값)과 ware(제품)의 합성어로 컴퓨터 사용자의 문서를 '인질'로 잡고 돈을 요구한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랜섬웨어에 감염되면 파일이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암호화돼 파일을 열어도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다. 사상 최악의 악성코드다. 10년 간 축적해온 각종 문서들이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공중으로 사라졌다. 아무리 복구 툴을 찾아봐도 없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업무가 마비됐다. 정신 또한 마비됐다. 악성바이러스는 몸값을 원했으나 정신이 팔려나간 느낌이다.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는 거꾸로 공공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느낌말이다. 마음에까지 악성바이러스가 번졌다.

▶사라진 문서 1만5000개는 '개값'에 팔려나갈 쓰레기가 아니다. 눈물이다. 그 문서를 만들고 있을 당시 난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전국 데스크 세미나)을 포기했었다. 잘츠부르크 미라벨 정원 앞의 모차르트 저택과 볼프강 호수를 포기했고, 독일 엘베강과 이탈리아 베르디극장, 체코 프라하 여행을 포기했다. 돌아오지 않는 문서 1만5000개는 '인간쓰레기'에게 도륙당할 서류뭉치가 아니다. 그 문서를 만들고 있을 당시 난 블라디보스토크와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인 시베리아 특급열차 여행(전국 데스크 세미나)을 포기해야만 했었다.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는 덤으로 잃었다. 왜 그깟 문서 1만5000개가 대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고하는 소심한 항변이다.

▶모든 게 사라지고 나자, 홀가분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졌다. 그 두려움은 1만5000개의 문서를 또 다시 만들어야한다는 중압감이 아니라 똑같은 일을 되풀이해야한다는 당혹감이다. 그 이질적인 두려움이 두렵다. 다만 위로 받고 싶지는 않다. 위로하는 척 하지만 웃고 있고, 안타까운 척 하지만 고소한 표정을 짓는 장삼이사들의 위선이 싫다. 세상에 가장 슬픈 일인 동시에 가장 재밌는 게 불구경이라고 한다. 그 불구경처럼 남의 불행을 염탐하며 즐기는 비열한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 문서는 잃었지만 사람은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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