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석 한국폴리텍대학 대전캠퍼스 학장
[목요세평]

일본은 1970년대 들어 '1억 총중류(總中流)’라는 말을 많이 썼다. 1950년대에 일본인들은 72%가 자신들을 중류로 평가했다. 그리고 196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10년 뒤에는 일본인 전체인 1억명의 총중류를 완성한 것으로 인식했다.

대량생산에 의한 상품가격 하락,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소득 향상, 종신고용과 고용보험에 의한 생활안정, 마이홈과 주택론, 자가용과 오토론, 가전제품의 할부, 사용목적을 제한하지 않는 노동자 금융 등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며 일본의 소비사회를 부추겼다. 그러나 일본은 1990년의 버블경제 이후에 중산층이 급격히 몰락하고 격차사회, 하류사회라는 현상이 급격히 대두됐다. 격차가 적은 사회, 중류사회에서 격차가 큰 사회, 하류사회로의 사회계층의 하향이동이 가속화됐다.

우리의 경우도 일본의 사례를 밟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중산층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5% 수준이다. 기부경험도 있고, 자원봉사 경험도 갖고 있다. 중산층은 경제력을 기준으로 볼 때 중간집단에 해당한다. 외환위기 전에 75%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그 비중이 많이 감소됐다. 경제위기가 중산층의 소득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에는 자신을 중산층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통계치보다 낮다. 일자리가 불안하고 노후가 준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면 중산층에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산층은 소득위주로 파악되기 때문에 경제활동이 없이는 중산층에 편입되기 어렵다.

경제위기 이후에 중산층이 감소된 것은 비정규직 증가와 관련이 있다. 약 1920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15년 전에 비해 650만 명이 증가했다. 비정규직의 증가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노인층이 되면서 중산층 범주에서도 멀어진다. 게다가 고령화 속도가 빨리 진행되고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이 낮기 때문에 노인 빈곤율도 높아지고 있다. 이래저래 중산층의 비중이 줄고 있다. 여기에다 젊은 층의 결혼 기피로 인구가 줄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인구가 줄고 노인층이 증가되면 내수시장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더욱 중요한 현상은 자신이 중산층임에도 절반가량은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후 준비가 안 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중산층은 사회적으로 중요하다. 중산층은 계급개념이 아니지만 사회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사회여론의 중간지대를 두텁게 만든다. 사회를 지탱하고 극단적인 갈등을 흡수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런 중산층이 흔들리면 사회 전체로서도 평화롭지 못하다.

지역갈등, 계층갈등, 이념갈등에 휩싸인 현상을 벗어나려면 중산층이 두터워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위기 때에 구제금융 실행계획을 지휘했던 데이비드 립튼 IMF수석부총재는 작년도에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점을 계층 간 이동의 붕괴, 중산층의 감소, 노동시장의 이원화, 고령자의 빈곤, 성적 불평등 등으로 꼽았다. 소비사회를 이끌고 사회적 완충 역할을 하려면 중산층의 지갑이 두툼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의 역설을 다시 보면서 우리 경제를 살리고 중산층을 살찌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