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한 노인이 뙤약볕 아래 커피 자판기에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투입구에 1000원짜리 지폐를 넣는데 계속 뱉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부정한 허리가 더더욱 절박해보였다. 하지만 어르신 만면엔 미소가 가득했다. 잠시 후 맛보게 될 달달한 설탕 맛을 이미 손끝으로 느끼는 듯했다. 곁엔 구부러진 지팡이가 노인의 한여름 '더위사냥'을 응원하며 땀을 흘렸다. 어르신에게 커피는 어떤 존재였을까. 왜 자판기 옆에 놓인 아이스크림 냉동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까. 그건 이열치열이 아니라, 청춘들의 '테이크아웃'을 닮고 싶은 욕망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인의 얼굴 주름에서 지나간 '세월'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요즘엔 걷는 일이, 일(事)이다. 걷다보니 세상의 속살이 보인다. 자동차로 다닐 때 보지 못한 소소한 풍경들이 파인더 속에서 꽃이 된다. 동네마다 바람의 맛이 다르고, 흙의 냄새가 다르다. 이건 이질감이 아니라,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이웃 간의 동질감이다. 서로 같고 또 서로 다른 생각들을 관통하면서 좋은 향기가 난다. 어쩌다 마주친 낮은 담장 위의 풀꽃조차도 많은 생각을 낳는다. 왁자지껄하게 살다가는 하루살이 꽃일망정 대충 살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의 삶에서 마주치는 일상을 치열하게 산다. 그래서 걷는 건 되돌아보는 각성이다. 지나온 길과 지나갈 길을 견주며 정성스럽게 희구하는 반추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에는 미련이 없어야한다. 후회가 있어도 안 된다.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소서." 미리 부고(訃告)를 써보라는 말은 권장이 아니라, 강권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년에 세상을 떠난다면 승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맥을 쌓느라 이 모임, 저 모임에 참여하는 게 무슨 득이 있을까. 부고를 써보면 삶의 우선순위가 나온다.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은 운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에 운이 좋았던 것이다.

▶필 때보다 질 때 더 아름다운 생멸(生滅)의 미학을 보여주는 게 꽃이다. 짧은 생을 불사르고 미련 없이 소멸하는 벚꽃은 사무라이의 절명(絶命)이다.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한 잎 한 잎 날리다가 지는 매화의 죽음은 풍장(風葬)이다. 하루 만에 펼쳤던 꽃잎을 오므리고 떨어지는 무궁화는 단명(短命)이다. 물론 떨어지는 꽃이 모두 아름다운 건 아니다. 순백의 육감적인 꽃잎을 자랑하다가 누렇게 말라 떨어지는 목련은 참혹한 꽃이다. 붉은 흉터를 온몸에 달고 투신하는 장미와 동백도 처연하다. 그러나 아름답든, 추하든 치열한 생몰의 인생을 사는 꽃들의 인생은 현명하다. 모든 꽃은 피어날 때 이미 질 것을 알고 있다. 꽃이 죽어야 그 자리에서 열매가 생기기 때문이다. 시나브로 세월은 가고 있다. 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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