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흥구 수필가
[에세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로마시내 관광에 나섰다. 버스가 출발하자 가이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로 안내를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인 바티칸시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났는데 역시 첫마디가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시작부터 머리가 무거워진다. 성스러운 성베드로대성당이 있는 바티칸에 와서도 마치 로마는 역사문화의 도시가 아니라 소매치기의 도시라는 색안경을 쓰고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로마 관광을 마치고 로마 귀족에게 인기 높았던 도시 폼페이로 향했다.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파묻힌 비운의 도시다. 참혹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비장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소렌토항으로 이동해 카프리섬 관광에 나섰다. 섬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있을 때도 소매치기 주의 경고는 계속됐다. 소매치기에 대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머리로 무엇을 제대로 보고 듣고 담을 수 있을까. 털어 버리기로 했다. 머릿속에서 모두 지우고 오직 관광에만 몰두하며 즐기기로 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더 깊게 보고 듣고 느끼며 즐기기로 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뿐이었다.

다음 날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 피렌체로 이동하는 버스에서도 소매치기 경고는 이어졌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아름답고 화려한 두오모성당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성당 주변을 감상하고 있는데 일행 중 할아버지 한분이 어깨에 메고 있던 손가방을 내려 열려 있는 지퍼를 확인하고 안을 살펴봤다. 800유로가 들어있는 돈 봉투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도 자신의 가방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살펴보더니 역시 돈 봉투가 사라졌다고 했다. 난감하다. 그렇게 주의하라고 경고했는데 우리 일행 중 두 분이 한 장소에서 동시에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여행 다닐 기분이 사라진다.

영국,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도 사정은 똑 같았다. 현지 가이드를 만나면 첫 인사가 소매치기를 주의하라는 말이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가 그날 촬영한 사진을 보면 손이 한결같이 메고 있는 가방 위에 올라가 있다. 한심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 돈만 잃어버렸으니 다행이다. 만약 여권까지 분실했다면 더욱 난감했을 것이다.

역사는 흘러가도 예술은 남아 있었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소득을 창출하는 국가들이다. 심지어 재앙마저도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킨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한번 찾아온 관광객이 제대로 느끼고 돌아가 주변에 광고한다면 더 많은 효과를 거둘 것이다. 이런 훌륭한 관광산업을 저해하는 소매치기라는 불청객만 해결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 관광객들이 이태리의 소매치기 같은 행태의 바가지요금이나 불친절을 겪게 한다면 우리가 해외에서 겪은 고통이나 다를 바 없다. 오는 손님에게 보다 친절로 대하고 관광객을 상대로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물론 온 국민이 이점을 특히 주의해야겠다. 이태리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불편함을 겪는 일이 없도록 친절과 미소로 대해야 우리 관광산업도 활력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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