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갑도 전 충북도중앙도서관장
[시론]

필자는 공무원연금공단 대전지부 산하인 청주상록이혈건강봉사단의 단원으로서 몇 년째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청주상록건강이혈봉사단은 일주일에 세 곳을 정기적으로 찾아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한다. 화요일은 청주 복대카리타스노인복지센터·요양원, 수요일은 청주 카리타스요양원, 목요일은 청주 성심노인요양원이다. 지난해에는 거의 일 년 가까이 골든노인요양원에서도 봉사활동을 했다. 그때 한 노신사의 부인에 대한 사랑이 감명 깊었기에 가끔씩 머리에 떠오른다. 오늘은 그때의 감명 깊었던 마음을 옮겨본다.

그 날도 노인요양원의 방을 돌면서 이혈봉사를 했다. 그러다 어느 방에 들어갔을 때, 침대 앞 의자에 앉아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한 노신사를 발견했다. 우리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의자에서 일어나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라고 정답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정장을 한 훤칠한 키에 준수한 얼굴의 노신사였다. 어디 한 군데 남에게 위해를 끼칠 끼라고는 없는, 그야말로 순하고 선하게 늙으신 얼굴이었다. 그러나 고독과 수심이 묻어있는 그런 인상이었다.

곁에 함께 있던 요양보호사가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이 할아버지는 오창에서 사셨는데, 할머니를 요양원에 위탁하고는 매일 요양원에 와서 할머니를 돌보셨다. 하지만 매일 오창에서 오기가 번거로워 지금은 이 요양원 근처에 아예 방을 얻어 혼자 지내면서 매일 같이 할머니를 찾아와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간, 순수한 황혼의 사랑, 살아남아 있음의 무게가 간단치 않은 영혼을 발견한 듯 숙연한 기분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70대, 80대, 90대 어르신들이다. 간혹 60대 어르신들도 계시기도 한다. 대부분 늙어서 거동조차 불편한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이 움직이고자 할 때에는 대부분 요양보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탄 채 움직여야 했다. 개중에는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는 어르신들도 더러 있었다. 어쨌거나 대부분 홀로되신 어르신들이다. 자녀들이 있지만 모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이렇게 위탁해 놓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황혼의 인생길을 외롭게 살아가는 고적하기 짝이 없는 분들이시다.

필자가 물었다. "어르신,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 희수(稀壽)입니다." 그러니까 77세였다. 그리고 우리 봉사단이 공무원 퇴직자로 구성된 것을 아시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셨다. "저도 철도청에서 공직을 마감했어요. 참으로 부럽네요. 치매에 걸린 아내가 내가 찾아오면 그래도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 하니까 매일 이렇게 오고 있어요"하고는 쓸쓸한 웃음을 보여주셨다.

인생의 황혼기에 멋진 영혼의 향기를 그때 느껴 볼 수 있었다. 각박하고 매정했던 세월에 쫒기면서 정신없이 허둥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 아내에게 빚진 감사와 은혜를 갚기도 전에 인생의 끝자락에서 허우적거리는 아내를 보는 안타까운 심사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할까. 애틋한 그리움, 아련한 안타까움까지 묻어 있었다. 참으로 고귀한 영혼이 있는 황혼의 사랑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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