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새벽2시, 아파트 내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떠드는 통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한마디 할까도 생각했지만 꾹 참았다. 결국 집밖으로 나와 근처 천변을 뛰었다. ‘달밤에 체조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깜깜한 천변은 괴기스러웠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올까봐 등골이 오싹했다. 두려움을 안고 그렇게 20㎞를 뛰었다. 그리고 20㎞를 걸어서 돌아왔다. 시침이 오전 6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천변의 속살을 일일이 체득한 기회였다. 새벽의 불한당들에게 ‘욱’하지 않은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자위했다.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머물러 있다. '오름' 버튼을 누르는데, 짜증이 밀려온다. 1층까지 내려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10초 이상은 기다려야한다. 드디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그런데 3층에서 멈춰 선다. (제기랄) 3층 정도는 계단으로 다녀도 되는 것 아니냐고 혼잣말로 구시렁거려본다. 뚜껑이 열리기 직전, 9층, 7층에도 선다. 속으로 (지랄) 욕이 자동으로 나온다. 사람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층 버튼을 마구 누르며 욱한다. 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30초 사이에 30년은 더 늙은 얼굴이 돼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는데 어떤 작자가 '문콕(차문을 열다가 옆 차에 흠집)'을 해 놨다. 허락도 없이 차문에 키스(기스)를 해놓고 태평하게 내렸을 그 (뻔뻔한) 낯짝을 보고 싶다. 조수석으로 몸을 간신히 끼어 넣어 운전대에 앉는다. 슬슬 짜증모드에 시동이 걸린다. 도로에 접어들자 짜증은 분노로 뒤바뀐다. 세상이 온통 '차·차·차'다. 한참 신호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빵빵거린다. 차선을 바꿔 갑자기 끼어들고, 급제동까지 한다. 보이지도 않는 선팅 사이로 삿대질을 하며 입을 벙긋거리는 모습이 분명 욕이다. 아, 30분 운전했는데 30년은 더 늙어 보인다.

▶만약 엘리베이터 안전장치가 풀려 그대로 끊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차선을 갑자기 바꾸다가 사고가 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사람은 의외로 참을성이 없다. 30초를 참지 못해 3시간, 30년을 후회할 수도 있는데 걸핏하면 '욱'한다. 이는 약자를 향한 분노다. 자기 영역을 침범한 불특정다수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욕은 '분노의 침전물'이다. 사회적 약자인 아동과 노인,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개저씨(개+아저씨)'들. 결국 약자를 괴롭히는 자가 약자다. 홧김에 '욱'하는 자가 바로 약자다. 언제쯤 마음이 둥글어질까.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상대적 박탈감은 빈부 양극화와 경쟁 과잉사회 분위기에서 온다. 결국 이런 사회를 만든 국가도 책임에서 면탈할 수 없다. 그러니 정부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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