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이응노미술관 관장
[아침마당]

남녀평등 시대를 넘어 여성상위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권이 득세한 오늘날, 광고 이미지를 보면 여전히 뽀얀 피부와 탄력적인 몸매, 남성을 사로잡는 듯한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여성의 이미지들로 넘쳐난다.

우리 사회는 이런 이미지들이 일상이며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19세기 인상파 화가 ‘고갱’이나 ‘드가’의 작품에서 보듯이 여성의 에로틱한 이미지는 마치 여성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다양한 회화기법으로 표현되었다.

이 작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들은 대부분 팔등신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주를 이룬다. 반면 당시 작품에서 젊은 남성의 신체가 은근히 드러나는 에로틱한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예술적인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에로틱한 이미지 역시 작가의 공허한 환상이나 취향만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이미지는 사회의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 중심 세계에서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에로티시즘의 재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연의 생명력과 타이티 여성을 주로 그렸던 폴 고갱은 서양문화의 허위와 부조리를 비판하고, 문명의 세계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떠났던 작가이다. 원시생활의 자유와 진실을 찾아서 1891년 이후부터 타히티섬에서 생활했던 고갱도 남성 중심의 시각을 떨쳐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1899년 작품 ‘망고 꽃을 들고 있는 타히티의 여인들’이라는 작품을 보면 우아하고 젊은 두 타히티 여인이 풍요롭게 표현된 젖가슴 바로 아래에 꽃 쟁반을 들고 서 있다. 원색적인 색채와 강렬한 두 여성의 이미지는 늘 인간 삶의 진실과 순수성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했던 그의 영혼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두 여인의 젖가슴은 마치 그것으로부터 모든 좋은 것들이 흘러나오는 과일과 꽃에 은유되면서 이 작품은 미학적 영역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은유조차도 하나의 에로틱한 이미저리의 구현이다. 작가는 여성을 남성의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으로 보고 잘 익은 과일, 꽃에 비유했던 것이다. 남성의 에로틱한 연상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드가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현대생활을 그리는 고전주의 화가가 되길 원했던 에드가 드가는 무희나 욕탕에 들어가거나 나오려는 여성의 한순간의 동작을 즐겨 그렸다. 그의 작품 가운데 카페나 술집의 분위기를 관찰하고 이를 묘사한 1879년 작 ‘손님’이 있다. 술집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매춘부의 순간적인 행동을 포착한 작품으로, 화면 중앙에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나이 든 매춘부가 보인다.

늙고 나이든 여성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불행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드가의 작품 속 여성의 에로틱한 이미지 역시 남성 중심의 고정된 성역할과 관련 있는 것이다. 여성의 능력과 지위가 높아진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의 외모를 강조하거나, 서양 사람들의 신체적 조건을 잣대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그중 다이어트 붐도 여성의 건강을 생각하는 면이 크지만, 혹독하리만치 까다로운 여성에 대한 미적 기준을 만들어 놓고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그만 남성 중심의 여성에 대한 편견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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