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원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
[반려동물 이야기]

얼마 전 고양이 한 마리가 진료를 보러왔다.

같이 오신 보호자는 중년의 나이가 훌쩍 넘어 보이시는 두 남자 어르신이었다. 몇 날 몇 일 밥을 안 먹고, 구토를 몇 번씩 했다는 이력이 있었다. 고양이를 여러 마리 기르는데, 몇 녀석이 같은 증상으로 이미 무지개 다리를 건넜기에 검사를 받아 보고 원인을 규명하고 싶다고 했다.

기본 검사를 한 뒤 당이 낮으니 영상 검사를 진행하기 전 수액을 맞추자고 보호자에게 말하니 고양이에게 들일 돈이 없으니 그냥 데려가겠단다. 참 난감했다. 뒷일은 너무 길어서 일일이 적진 못하겠으나 결국 이 고양이는 건강한 상태로 집에 돌아갔다.

문제는 보호자라고 온 분들은 고양이를 원래 샀던 값 이상으로는 절대 투자할 수 없단 거였고(동물에 대한 마인드를 보여주는 단적 예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은 고양이를 10년 이상 키워 오면서 고양이에 대해 자신들이 매우 잘 안다고 생각해 주로 본인들이 직접 약물을 투약하는 형태의 자가 진료를 일삼는 소위 '고양이 농장' 주들이었다.

또 한 번은 개 두 마리가 실려왔다. 심각한 구토와 탈수를 주 증으로 왔던 이 개들은 이력상 구충제를 집에서 투약받았다고 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보호자들은 직업이 약사였고, 이 개들에게 사람이 먹는 구충제를 어린이 용량으로 먹였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이 두 개들은 급성 간부전으로 진단됐다. 이후 빠르게 다발성 장기 부전증(원발 질병이 심해져서 다른 장기들까지 기능 부전에 빠지는 상태) 으로 진행해 두 마리 모두 폐사한 내가 본 중 가장 안타까운 자가진료 사건이었다. 수의사를 하다 보면 이 뿐만은 아니다. 집에서 사람이 먹는 진통제를 먹인 사례부터 약국에 가니 용량을 성인 어른의 1/4로 지어주며 안전하다고 했다면서 투약 받은 약물들로 인해 실려오는 사례, 일단 갖고 있는 약물을 먹였다는 보호자, 지인이 약사여서 지어주는 약을 먹였다는 분 등 일일이 다 꼽을 수는 없지만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곳은 대학동물병원으로 이런 동물들을 직접 보는 경우부터 지역의 작은 병원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목도하게 된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아주 간단하다. 오랜 시간 농장을 경영한 보호자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동물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감을 가질 수도 있고 지고 잘 알 수도 있다. 혹은 질병에 대해 공부하면서 약에 대해서는 잘 알 수도 있다. 아주 일상적인 원인에 의해 구토, 밥 안 먹는 증세, 혹은 설사가 나타나는 경우에는 그런 방법들로 나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작은 가벼운 증세였을지 몰라도 잘못된 투약에 의해 병이 커지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사람이 만들어 낸 '인재'가 아니던가. 이러한 인재야말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들이지 않은가. 수의학에서 배우는 엄청난 질병 리스트 중에 '구토', '밥 안 먹는 증상', 혹은 '활력 저하 증상' 등은 소위 '비특이적 증상'이라 하며 내과적인 질환의 경우 대부분이 이런 증상으로 그 병의 알림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그야말로 특이적인 증상이 아니기 때문에 증상만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물론 구토만 막는다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수의사로서 안타까운 부분은 바로 이런 것을 사람들이 간과한다는 점이다.

필자도 수의학을 공부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공부할 것 투성이인 이 학문 앞에서 항상 겸허한 자세로 임하는 이유는 나로 인해 한 생명이라도 더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척추동물이라는 차원에서 포유동물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생명체'라는 차원에선 모든 동물이 다르지 않겠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개는 (혹은 고양이는) 작은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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