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재발견 (25) 목척교
1912년 일본인들에 의해 건립
반세기 대전역~도청 잇는 역할
1973년 복개공사로 자취 감춰
30년만에 새얼굴… 쉼터 큰사랑

▲ 목척교 야경. 정재훈 기자
여름의 초입, 사람들은 강으로 향한다.

후덥지근한 집을 벗어나 탁 트인 하늘과 물이 흐르는 천변에 앉아 있으면 온갖 근심이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하루의 일과를 모두 끝낸 오후 8시 무렵 대전 동구 목척교 인근에 인파들이 삼삼오오 모여 초여름을 즐기고 있다. 대전천 강바람을 맞아가며 노인들은 장기와 바둑 삼매경에 빠졌고, 젊은 학생들은 음악 분수가 쏟아내는 물줄기에 시선을 빼앗긴 채 더위를 잊고 시간을 보낸다.

목척교 아래 벤치에 앉아 다리와 분수에서 쏟아지는 조명을 보고 있노라면 더위는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고,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된다. 보는 위치에 따라 학이 날개를 편 듯, 거북이의 등껍질 같기도 한 목척교는 밤이 되어서야 조명 빛 아래서 낮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흘러간 옛 가수 안다성 씨가 1960년대 발표한 ‘못 잊을 대전의 밤’이란 노래에서도 목척교가 등장한다. 노랫말은 ‘가로등 희미한 목척교에 기대서서 나 홀로 외로이 이슬비를 마셔가며 그 옛날 안타까이 불러보는 첫사랑 못 잊는 대전의 밤이여’로 목척교에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그리고 있다.

대전천 경계를 가로지르는 목척교는 104년의 역사를 지녔다. 1912년 일본인들이 처음 세운 목척교는 나무로 지어진 ‘목교’로 당시 돈 4600원(약 2억원 상당)을 들여 세워졌다.

교량 이름의 유래는 다리가 놓이기 전 징검다리를 지나던 새우젓 장수가 항상 징검다리 한가운데 지게를 받치고 쉬는 모습이 목척(木尺)과 같다는 설과 나무로 만든 다리라고 목척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대전역과 도청을 이어주는 역할로 반세기를 지내왔고, 1973년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 건설로 인한 복개공사로 자취를 감췄다. 복개로 인해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목척교는 대전천 위에 세워진 홍명상가, 중앙데파트가 철거되며 30여년 만에 다시 시민들 품으로 돌아왔다.

2010년 새로 지어진 다리는 예전의 투박한 모습을 벗어내고, 나무의 줄기세포에 착안한 13.6m의 조형물과 옛 징검다리, 벽천분수를 품고 다시 태어났다. 당시 대전천 아래서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를 받치고 있던 461개의 기둥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단 1개만이 남아 다리 아래 비석처럼 남아있다.

나무에서 콘크리트로, 예술적 조형물을 품은 채 대전 근현대사 한가운데서 수많은 풍파를 견뎌낸 목척교는 이제 시민의 쉼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수많은 연인들이 목척교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다리 아래는 어린 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까지 남녀노소의 휴식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목척교에서 한참을 쉬고 난 후 주위를 둘러보니 동쪽으로는 대전역과 중앙시장 한약방거리, 서쪽은 으능정이 문화의거리, 옛 충남도청, 대흥동성당이 자리해 어느 방향으로 가도 볼거리가 즐비하다. 원도심의 정중앙에 위치한 목척교. 여름밤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오늘도 내일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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