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이사를 가기 전날, 뜬눈으로 날을 샜다. 정들었던 둥지를 떠나는 심정이 착잡했던 것이다. 옆집에 밥을 먹는지, 국수를 삶는지 지척 간에 넘겨다보며 살던 이웃과의 석별도 마뜩찮았다. 눈꺼풀이 깃털처럼 내내 펄럭였다. 새로운 둥지로 이사를 마친 그날 밤도 뒤척였다. 설렘보다는 무단침입을 한 것 같은 낯섦 속에서 무게중심이 흔들렸다. 달빛이 거실까지 스며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여명을 하얗게 태웠을 것이다. 별안간 감나무 아래 뒤꼍에서 개미집을 파고 놀던 유년시절이 떠올랐다. 사람 키만큼이나 큰 개미집은 깊은 연민이었다.
▶20년 넘게 집 평수를 넓히기 위해 길갓집도 마다하지 않았다. 번듯한 집으로 이사 갈 꿈을 꾸며 매일 허공 속에 집을 짓고 또 지었었다. 그러나 방 한간(3.5평·11.5㎡), 부엌 한간(2.5평·8.2㎡)부터 시작한 집은 24평(79.3㎡)을 거쳐 33평(109㎡)에서 정점을 이루다가 멈춰 섰다. 6평(19㎡)일 때는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고 몇 사람이 찾아왔어도 만나지 않았다. 외부와 절연하는 동시에, 뻥 뚫린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다가 슬픔의 이불을 덮고 숨기 바빴다. 그때의 집은 이방인의 냄새로 가득했다. 새의 집, 거미집, 까치집, 처마 밑의 제비집, 보리밭 이랑의 종달새집, 나무통 속의 딱따구리 집보다 슬펐다.
▶이사는 여행이다. 역마살 많은 사람들의 안달 나는 여행이다. 행복의 관점이 낮아진 여행(이사) 이후,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스물세번의 이사 이력은 바벨탑 꼭대기만을 응시하던 시선을 아래로 내리게 했다. '세상은 변하는 것 같지만, 변하면 변할수록 같아진다'는 파피루스 구절을 몇 번씩 되새긴다. 집이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을 만나고, 일생을 통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또한 힘들고 지칠 때 제일 먼저 찾는 곳이다. 그래서 낮은 둥지일수록 안온하다. 낮은 곳에서 피는 꽃은 북새를 떨지 않기 때문이다. 짐칸 같은 일상사를 잠시 접고, 거저 생긴 마당의 정원을 바라본다. 아, 이것이 인생의 쉼표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