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희 플랜트치과 대외협력원장(예비역 육군 준장)
[아침마당]

지하철을 탄 많은 승객들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연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그들은 지금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하고 있다. 인류 사회에서 모름지기 인간관계 확장의 단초는 대화였다. 그리고 종래 그 전형적인 방식은 면대면 또는 전화 통화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대화의 채널과 형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텍스트 메시지이다.

필자의 어제 핸드폰 사용 기록을 보더라도 전화 통화를 20회 한 데 비해 문자 교환은 50회를 넘겼다.

텍스트를 이용한 대화와 소통의 비중이 급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문자를 통한 대화의 행위가 현대사회의 개인 및 소집단 커뮤니케이션 활동에서 중요한 영역이 된 지 오래 됐으나, 실제 사용자들의 의식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일반 대화와 전화 통화에 대해서는 그 행위 효과를 높이기 위한 매너와 테크닉이 강조되고 학습되고 있는 데 비해서 텍스트 메시지를 통한 대화에 대해서는 너무 쉽고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근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쌍방향이라는 점에서 '말하거나 보내는 사람'이 전달하려는 의도를 '듣거나 받는 사람'이 얼마나 제대로 읽고 파악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학문 가운데 기호학(記號學)에서는 그 과정을 '의미작용'이라고 한다. 만일 그 의미작용에 불일치가 일어나면 그것은 실패한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또 관련 이론에서는 그러한 편차를 가져오게 하는 것을 소음(noise)이라고 한다.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대화한다거나, 보내고자 하는 의미와 정서를 충분히 담을 수 없는 정보량의 제약 등이 그것이다.

그런 면에서 텍스트 문자로만 주고받는 메시지 대화는 마주 보고 표정, 억양, 몸짓을 쓰면서 말하는 일반 대화보다 메시지 의미가 변질될 수 있는 소음 정도가 대단히 높다. 특히 가장 큰 어려움은 감정이입의 문제이다. 그러나 인간의 적응력은 뛰어나다. 이러한 텍스트 문자 메시지의 한계를 보정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이모티콘(emoticon)이다.

감성(emotion)과 아이콘(icon)이 결합된 말이다. 아스키 문자를 이용한 비언어적 수단으로서 어찌 보면 최첨단 통신수단에 원시적인 상형문자가 한 몫 하고 있는 셈이다.

이모티콘의 위력은 자못 크다. 딱딱하고 감정이 모호한 텍스트 문자 대화를 부드럽고 감성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바꿔준다. '네.'와 '네∼^^', '바빠서'와 '바빠서 ㅠ' 는 문자를 받아 볼 때 그 느낌부터 다르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망명 당시에 자신의 소설 '레미제라블'이 잘 팔리고 있는 지 궁금해서 '?'만 적힌 전보를 출판사에 보냈는데 '!'라는 답장이 왔다고 한다. 이 일화는 종종 중년 세대에서 메신저 앱(App)에 서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한두 개의 문자 기호와 이모티콘은 텍스트 문자 커뮤니케이션의 오해를 줄일 뿐만 아니라 맛깔나는 의사소통을 위한 기술과 예절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소통의 시대, 감성의 시대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