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수필가
[에세이]

산천초목이 향유를 바른 것처럼 고운 계절, 좌구산에 있는 지인의 배나무밭에 갔다.

첩첩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배나무밭은 사람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아 풀과 잡목, 칡덩굴이 자라 무법천지가 됐다. 배나무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주인이 뿌려준 거름을 도둑질한 염치없는 불청객 기세가 당당하다.

문득 요즘 말썽이 많은 세제 만드는 모기업이 떠올랐다. 남의 생명이야 잃건 말건 내 욕심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리배를 닮았다. 서둘러 놈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기세 좋게 배나무의 숨통을 조일 것이 분명했다.

호미와 삽, 톱을 꺼내 들어 풀을 뽑고 잡목을 캐냈다. 제법 뜨거워진 햇살에 땀이 비 오듯 하고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밭두둑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사방팔방 손을 뻗으며 배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덩굴이 야유를 보낸다. 지난해 슬쩍 눈감아 버린 게 화근이었다. 못된 것들의 삶을 분탕질하듯 순을 자르고 뿌리를 향해 삽질을 해댔다.

몇 년 간 세력을 키워온 칡은 밭주인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검은 뿌리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한참 파 내려가자 배나무와 칡이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한 듯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 뿌리가 보였다. 어느 것이 배나무뿌리이고 어느 것이 칡뿌리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마치 인간의 선과 악처럼….

뒤틀려 있는 칡뿌리를 캐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삽 하나가 부러지고 말았다. 한 시간여 씨름 끝에 꽤 실한 칡뿌리 하나를 캐냈다. 엉켜있던 배나무 뿌리가 너덜거렸다.

빈대 없애려다 초가삼간 태운 꼴이 될까 걱정이 됐지만, 칡을 그냥 두면 배나무가 그 등쌀에 그만 고사하고 말 것 같았다. 희생이 따르더라도 지금 없애지 않으면 칡은 밭 전체를 차지하고 떵떵거리며 제 세상을 만들는지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아주 작은 세력도 확장되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괭이를 잡아들었다. 악의 근거지를 없애려는 듯 사력을 다해 땅을 파고 톱질을 해댔다. 악착같이 배나무 뿌리를 옭아맸던 칡뿌리가 처참하게 널브러졌다. 하지만 무자비하게 잘리고 뽑힌 칡뿌리가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부분적으로 검게 썩어 있었다. 배나무의 양분을 빼앗아 먹으며 제 세상인 양 자리를 차지하고 떵떵대던 칡도 완전체가 될 수 없었던 게다. 한계다. 칡은 앞뒤 가리지 않고 제 영토 늘리기에만 전전긍긍했지 자신을 돌아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배나무와 칡은 모두 유익한 식물이다. 만약에 칡도 배나무밭이 아닌 산이나 들에 제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렸더라면 원수가 당하듯 그렇게 매몰차게 잘려나가지는 않았으리라. 아니 오히려 좋은 약재라고 소중히 대접받지 않았겠는가. 아무리 좋은 약재라도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자라는지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약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죽음의 자리가 되고 만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이 칡의 꼴이 될까 두렵다.

사람살이도 배나무와 칡처럼 서로 얽히고설켜 어느 땐 진실이 잘려나가기도 하고 왜곡되고 변형되기도 한다. 성공하기 위해선 남의 밥상에 숟가락 얹는 것이 예사요, 남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마땅히 가져야 할 죄스러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다. 오늘은 산중 배나무밭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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