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구 대전시 문화체육관광국장
[시론]

옛날, 어느 가난한 사람이 부자 친구를 찾아갔다. 그는 찾아온 벗을 술과 산해진미로 대접했다. 마침 급하게 먼 길을 떠날 일이 생겨 술 취해 잠든 친구의 옷 안쪽에 진귀한 보석을 넣고 잃어버리지 말라고 바늘로 꿰맸다. 가난한 친구는 그것도 모르고 동가숙 서가식하며 어렵게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두 친구가 다시 만난 뒤에야 자신이 늘 진귀한 보석을 품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에 나오는 무가보주 이야기, 즉 내 안에 보물이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산다는 중생들을 일깨워 주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를 뛰어넘지 못하고, 태어나면서 관혼상제라는 문을 거쳐야 한다. 또한 부모자식을 그리워하며 사는 게 인지상정이고, 그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부처님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던 모양이다. 출가 전에 꿈속에서나마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고 한다.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 손에 자랐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 이모가 최초의 여승인 마하프라자파티다. 왕자 싯다르타는 어느 날 밭가는 광경을 보고 ‘세상의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는 화두를 잡고 집을 떠난다. 성곽 동쪽을 흐르는 아노마강을 건너고 동남쪽으로 이동하며 스승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맨발에 머리를 깎은 싯다르타는 히말라야 설산에서 발원한 갠지스 강을 건너 우루빌라 마을의 고행림에 자리를 잡는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죽음의 끝자락에서 天女의 소리를 듣게 되는데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행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 이곳을 지나던 우루빌라 성주의 딸이 쓰러져 있는 싯다르타를 발견하고 집에 데려와 봉양을 한다. 몸을 추스린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에서 7일 동안 앉아 있었다. 여기서 연기법을 깨우침으로써 인간 존재를 구제할 길을 찾게 된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이 세 가지가 없었다면 如來는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잡아함경이 밝힌 붓다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다.

이 땅에 부처님이 오셨기에 인간은 번뇌를 벗어나 비로소 참다운 인간이 되는 길을 알게 됐다. 불교에서 깨달았다는 것은 지금 나와 내 주변에 있는 행복과 불행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제대로 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누구나 부처(깨달은 사람)가 될 수 있다. 미륵부처, 약사여래부처, 비로자나 부처 등 부처가 많은 이유다.

그렇다면 부처님 오신 날 왜 등불을 밝히는 것일까? 등불은 무명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 즉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상징하며 자신의 죄업을 소멸시키기 위해 부처님께 올리는 참회의 표현이다. 관등놀이와 연등놀이가 신라시대부터 시작됐고, 고려 시대에는 호국의식으로 성행했던 전통있는 행사다.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을 사랑한다고 한다. 만족이 행복이고, 불만족이 곧 불행이라는 뜻이다.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적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한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얻게 된다. 운동을 하면 근육량이 늘어나듯 행복을 일으키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행복감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자각 하는 것, 그리고 날마다 기적처럼 사는 일, 그것이 부처님 오신 날을 되새겨 보는 깨달음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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