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이야기①>

평화롭던 어느 날, 아내가 갑작스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에 실려 갔다.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아내는 계속 괴로워했고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갔다. 폐가 엄청나게 손상돼 이식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중 아내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감기 증상이 있다고 한 아내를 위해 가습기를 더 세게 틀어줬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피해자 이야기②>

당시 아이가 3살이어서 혹시 모를 세균 번식의 불안함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그런데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공기가 안 좋아서 폐렴이 걸렸나'라는 생각에 가습기를 한 대 더 틀었다. 다시는 병원에 오지 말자고 아이와 손가락 맹세를 했건만 한 달도 안 돼 물거품이 됐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한 행위가 아이를 사지로 내몰았다.

▶살인제로 돌변한 옥시 살균제는 10년간 450만개나 팔렸다.

옥시 말고도 14개 업체가 살균제를 팔았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의심사례만 400여건에 달한다. 이중 146명이 사망했다. 1997년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한 업체들은 '독성실험 결과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고 밝혔다.

한술 더 떠 '가습기 살균제를 국내 기업이 최초로 개발했다'며 호들갑까지 떨었다. 기술표준원은 국가통합인증(KC) 마크를 떡 하니 붙여줬다. 원인 규명이 이뤄지는 동안 제조업체는 철면피였고, 정부는 철부지였다.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영혼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멈추지 않는 눈물들, 아무도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1982년 9월 시카고에서 열두 살짜리 소녀가 초강력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지 한 시간도 안 돼 사망했다.

우편 배달원을 포함해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사결과 타이레놀에 치사량을 넘어선 청산가리(시안화칼륨)가 들어 있었다. 존슨앤존슨은 첫 번째 사망 보도가 나간 뒤 문제의 약품을 전량 회수했다. 소매가 기준으로 1000억원어치가 넘었다. 존슨앤존슨의 시장점유율은 35%에서 8%로 폭락했다. 엄청난 손해를 입었음에도 존슨앤존슨은 유가족 위로를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회장 역시 '빨래 끝~'하듯 사과하지 않고 가슴 깊이 용서를 구했다.

▶'죽음의 향기'가 비단 가습기 살균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세정제, 방향제, 탈취제, 물티슈, 합성세제, 표백제, 섬유 유연제 등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유해 화학물질의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장소와 대상이 무차별적이고 불특정다수라는 점에서 더욱 두려워진다. 누구 한 놈 본때 보이기로 처벌하거나, 돈으로 죗값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죽음은 모든 걸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할 수 없을 때 용서를 구하는 것은 기만이다.

말로 하는 사과도 용서가 가능할 때 가능하다. 더군다나 사과 받을 생각이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는 능멸이다. 가족의 죽음은 쉽게 위로할 수 없고, 쉽게 위로받을 수도 없는 눈물이다. 이들의 피맺힌 절규에 우리 사회는 용서를 구했는가, 용서를 받고자 했는가.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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