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아침마당]

최근 한국 대중문화가 국제적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하면서, 한국 순수예술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술에서는 1970년대 한국 미술계의 메이저 경향이었던 단색화가 해외 미술시장을 시작으로 국제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단색화 작가들은 작고했거나 혹은 80대 원로 작가들로 한국 모더니즘 미술운동의 주역들이다. 또한 1950년대에 건립된 미술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1세대들로서 현재 동시대 작가들의 스승이기도 하다.

1950년대 홍익대 미대 설립에 참여하고 고암화숙을 운영했던 이응노 화백이 단색화는 물론 한국 현대미술 운동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세기 격변했던 한국 현대사 속에서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동서양 미술을 습득하고, 급기야 1958년에는 직접 현지에서 서양미술을 체험하기 위해 파리행을 선택했다.

서구 모더니즘 미학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는 1910년대에 시작되었고, 1920년대에 와서 해외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잡지나 일본화집 등을 통해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의 등과 같은 모더니즘 미술이 한국화단에 소개되었다.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은 1930년대인데, 당시 모더니즘 미술운동은 일본의 개입과 억압이 심해지면서 운동 본래의 개념과는 달리 문명비판적인 성격보다는 지극히 협소한 형식적 의미만 남게 되었다.

게다가 한국화단은 1945년의 해방과 해방 이후 좌익과 우익의 분열로 인한 갈등은 더 심화되고,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터지면서 혼란이 거듭된다. 겨우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반에 와서야 한국화단이 어느 정도 정상을 찾게 된다.

이후 다양한 모색과정을 거쳐 1970년대가 되서야 한국적 모더니즘이 비로소 정착하게 된다. 본격적인 모더니즘 미술의 시작은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6·25를 겪은 후, 1950년대 말부터 일어난 추상미술운동이다. 특히 전후의 시대적 위기감이 반영된 추상미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일부에서는 추상이 시작되는 1957년을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 추상미술운동은 한국화단의 주류였던 사실주의적 아카데미즘 양식을 배격하고 추상 중심의 실험 정신을 표방하였으며, 권위적인 국전에 대한 반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에서 사회개혁 의식과 미술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미술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추상미술은 한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집단적 현대미술운동이며, 더 이상 일본을 거치지 않고 들어온 서양미술 양식이다. 한국 모더니즘미술은 서양미술의 도입과 수용에서 시작되었고 그 과정도 단편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으나, 해방이후 서구 모더니즘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특히 일본과 프랑스를 오가며 한국 현대미술의 기초를 다진 이응노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월 세루누치미술관의 이응노 화백 관련 세미나 등 이제 해외에서의 한국 현대미술 평가는 이응노 화백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국제큐레이터들의 이응노 읽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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