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아파트 사이사이에 벚꽃이 피었다.

그리고 볕 오른 곳이라면 어디든 피었다. 벚꽃은 채근할 때 보지 않으면 때를 놓친다. 화들짝 피었다가, 화들짝 죽는다. 바람에 흩날리며 산화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수치심 드러내길 싫어하는 벚꽃의 정령은 죽을 때도 주위에 폐가 되지 않을 만큼 정결하다.

더더구나 이들은 '다 함께' 피었다가 '한꺼번에' 진다. 개별성을 갖지 않는다. 한 잎, 한 잎이 모여 생명의 비장미와 극치미를 절정까지 끌어올렸다가 한순간에 불꽃처럼 소멸한다. 절정은 아름다움의 서막이 아니라 끝이다.

온몸의 진액을 모두 끌어올려 불태우는 장렬한 소진이다.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숨 돌리는 사이 잠깐이다. 그래서 가장 극적인 낙화의 미학을 보여준다.

▶벚꽃은 유독 꽃잎이 얇다.

그래서 하나하나 흩날리듯 떨어진다. 꽃비다. 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이 잎겨드랑이에 2~3송이씩 모여서 핀다. 꽃말은 순결이다. 마음 한 켠을 아리게 하는 그 연약한 존재성은, 사실은 아주 단단하다. 그래서 벚나무는 조각재, 칠기, 인쇄용 목재로 많이 쓴다.

고려팔만대장경판도 벚나무로 깎았다. 벚꽃의 경우 온도의 차이에 민감하여 나무의 아래쪽과 위쪽의 개화시간 차이가 뚜렷하다. 벚나무가 날씨를 알아보는 것은 기온 변화에 대응하는 '온도계 단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화신(花信:꽃소식)은 남쪽으로부터 온다.

보통 진달래가 개나리보다 하루 늦게 피고, 다음에 목련이 핀다. 벚꽃은 개화일로부터 보통 7일쯤 후에 만개한다. 봄꽃의 개화 시기는 하루에 약 20~30㎞ 정도 북상하는데 이 속도는 가을에 북쪽에서 내려오는 단풍의 속도와 같다.

때문에 가을은 북쪽에서 오고 봄은 남쪽에서 온다. 화신은 벌과 나비가 나오는 시기에 맞추어 꽃을 피우면서 스스로의 생존법을 갖게 한다. 만일 꽃들이 제멋대로 피고지면 지천(池川)에는 사랑 받지 못할 꽃들로 난장판이 될 것이다.

▶봄의 정령을 담은 꽃들이 피고 질 때, 이 지상에도 더럽고 추잡한 꽃들이 피고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 했거늘, 정치는 여전히 번잡하게 피고진다. 저마다 군국주의의 꽃을 틔우고 표밭을 기웃거린다. 더더구나 화들짝 피었다가 화들짝 진다. 이들은 '다 함께' 피었다가 '한꺼번에' 지지도 않는다. 스스로 개별성을 갖는다. 수치심도 없다. 산화하는 모습조차도 추하다.

 금세 질 것을 알면서도 싹을 틔우고, 열매까지 탐하니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어이없는 개화다. 화무십일홍, 왜 정치인만 모르고 있는 걸까. 아니, 왜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걸까. 권세와 세력을 좇는 그 꽃의 정령이 불결하기 이를데 없다. 벚꽃 늘어진 국회의사당 옆 윤중로에는 지금 수없이 붉은 꽃비가 내리고 있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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