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석 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에세이]

3년 전 귀농 교육생들과 함께 대구에 소재하는 농기계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구내식당 옆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벽면에 걸려있는 큼직한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막에는 백세건강비법 '1:10:100:1000:10000'이라 적혀 있었다. 그 의미는 '하루에 1가지 이상 선행을 하고 10번 이상 웃으며 100자 이상 쓰고 1,000자 이상 읽으며 10,000보 이상 걷자.'는 뜻으로 하루를 의미 있고 보람차게 살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를 본 어느 교육생이 "1은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선행하고, 10은 열 명이상을 만나고…."라고 하자, 또 다른 교육생이 "하루에 1번 똥싸기, 10번 웃기, 100번 쓰기, 1000번 읽기, 10,000번 걷기를 해야 백세까지 건강하게 산다는 말이야!"라며 '똥누기'를 '똥싸기'로 완곡하게 표현해 주변을 한바탕 웃게 했다. 이처럼 10의 거듭제곱 숫자에는 다양한 의미를 붙인다.

3월은 사람들이 꽃 보는 일로 시작하는 봄마중이 시작되는 달이다. 농부의 봄맞이는 꽃 훑는 일로 시작된다. 지난 날 웃고 지나갔던 글귀, '1:10:100:1000:10000법칙'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농부의 삶을 보았다. '똥싸기, 웃기, 쓰기, 읽기, 걷기'속에는 '비움, 솟음, 깨움, 채움, 나눔 그리고 다시 비움, 솟음'의 순환하는 농심(農心)이 있다. 빈 들판에 웃음으로 희망을 솟게 하고, 쟁기 잡은 손으로 생명을 깨우며, 삶에 지식을 더하듯 들녘에 곡식을 채운다. 그리고 채워진 곡식을 세상에 아낌없이 나눈다. 그래서 비워진 들판에 또 다시 희망을 샘솟게 한다.

얼마 전 강의 중에 농업인에게 "농심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했다. 정직, 모정, 생명 등 다양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농심(農心)은 슬픔이다"라는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이 분은 50대 후반의 귀농인이다. 퇴직하고 농촌에 와보니 자신이 마을에서 가장 젊다고 하면서 수 십 년 농사일을 하신 어르신들의 모습을 볼 때면 슬픔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왠지 마음이 찡해왔다.

농심은 만남이다. 땅과의 만남, 하늘과의 만남,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다. 흙과 비와 그리고 바람과의 만남 속에서 얻은 것을 사람과의 만남에서 모두 비운다. 왜냐하면 농부(農夫)는 별(辰)을 노래(曲)하는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슬픈 농부의 아픔을 먹으며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움의 계절인 겨울을 지나, 생명의 깨움이 있는 봄이 올수 있는 이유는 그 사이에 희망의 솟음, 바로 사람들의 따뜻함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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