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근 충북도 농정국장
[시론]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모두가 가난했던 그 때엔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던 날이 손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설, 추석, 생일 그리고 제삿날이 그 날이었다. 그렇게도 귀했던 쌀을 이젠 가축들도 먹게 됐다. 쌀 재고량이 넘쳐나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올해부터 식용으로 어려운 쌀을 사료용으로도 공급키로 한 것이다. 우선 9만 9000t을 시작으로 수급상황에 따라 공급 물량이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올해의 경우 사료용 쌀 공급으로 사료 곡물 수입대체 효과는 27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쌀은 예로부터 보리, 콩, 조, 기장과 더불어 오곡의 하나로써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먹거리다. 생명과 건강을 지켜 온 민족의 곡식이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처럼 쌀과 관련된 속담이 유난히 많을 만큼 가장 가깝고 소중한 주식이었다. 이렇게 귀한 쌀이 천대받는 시대가 되었다. 생산은 많은데 소비는 점점 줄어 재고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선, 생산 측면에서 보면 급격한 산업화로 벼 재배면적이 적잖이 감소함에 따라 2001년도 551만t을 정점으로 생산량도 감소추세에 있다. 하지만 최근 3년간 풍작이었고 특히 지난해는 432만t(충북 21만t)이 생산돼 평년보다 9%가 증산됐다. WTO에 따른 의무적 쌀 수입량 40만t(대부분 가공용이고 밥쌀용은 6만톤)까지 합하면 472만t이 공급된 것이다. 연간 소비량은 397만t으로 이에 미치지 못하니 지난해만 해도 75만t이 재고로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매년 공급과잉으로 인한 정부 쌀 재고는 전국적으로 190만t(충북 3만t)에 달한다. 연간 재고 관리비용만 5000억원(충북 98억원)으로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재고가 넘쳐나는 이유는 공급과잉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수요감소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2.9㎏으로 전년보다 2.2㎏ 감소했다. 관련통계가 시작된 1963년 이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으로 최고점을 보인 후 매년 평균 1.6㎏씩 감소되고 있다. 46년이 지나는 동안 쌀 소비는 46.1%가 되었으니 매년 1%씩 줄어든 셈이다. 다이어트 한다고 끼니를 거르거나 밀가루 음식, 과일, 육류, 패스트푸드 등의 음식으로 대체하는 사회적 변화 때문이다.

특히 육류의 경우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970년 5.2㎏에 불과하던 것이 2015년엔 47.6㎏으로 46년간 9.2배 증가했다. 1970년부터 2015년까지 46년간 쌀 소비는 반 이하로 줄었는데 육류는 9배 이상 늘었으니 육류가 쌀 소비를 대체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보인다.

패스트푸드와 육류 등 서구화된 음식문화로 비만과 암,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성인병이 급증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장암 발생률은 닭고기와 생선을 제외한 육류 소비량과 정확히 비례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현미 채식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가장 강력한 예방의학이자 치료제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현미 채식을 하면 의료비가 3분의 1로 줄어들고 성인병 사망률 또한 그만큼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에 따라 충북도에서는 쌀 소비 촉진을 위한 특수시책으로 웰빙 특수미 지원사업, '밥맛 좋은 집' 지정(94개소), 유관 기관단체와 함께 바른 식생활 교육과 '아침밥 먹기' 캠페인 등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엔 중국 수출 길도 열었다. 쌀밥을 많이 먹어야 개인의 건강도, 농업인 소득도, 국가재정도, 식량안보도 나아진다. 쌀 농업을 지켜가는 것은 식량창고의 열쇠를 우리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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