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옥 충남문인협회장

2004년도 이제 보름 정도 남았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어쩐지 애처롭게 보이는 것은 무슨 아쉬움이 남은 때문일까. 돌아보면 올해도 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다. 대통령 탄핵 문제와 행정수도 이전 문제 등으로 국민이 크게 대립하였고, 4·15 총선으로 나라가 크게 요동을 친 것 같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긴 터널을 가슴조이며 빠져나온 것처럼 안도의 숨을 몰아쉬게 된다.

우리가 언제 그리 마음 편히 살았던 시절이 있었을까마는 올해처럼 거세게 소용돌이친 해도 드물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겪어야 했던 분열과 갈등은 말할 수 없이 크나큰 고통이었다. 우리 남한 내부에서 이렇게 첨예하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대립하였던 것이 언제였던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한 해였다.

크나큰 사건들이 세상을 휩쓸고 지날 적마다 앞으로는 평온한 세월만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하였지만, 그것은 단지 희망사항에 그치고 말았다. 그것은 바다가 언제까지나 잠잠하기만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듯이 새로운, 그리고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져 어김없이 우리를 혼돈 속에 몰아넣곤 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들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이 생활 속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국민된 것이 자랑스럽고 다행스러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많은 국민이 기회만 허락된다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거나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첫째 이유는 먹고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살겠다는 사람보다 못 살겠다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것보다도 더욱더 염려스러운 일은 미래에 대하여 희망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적다는 것이다. 오늘이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이 있으면 고통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근로자들이 땀 흘려 일해도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고, 젊은이들이 열심히 공부해도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이 신명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어찌 능률을 올릴 수 있으며, 남보다 앞서 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지도 아니하고, 국민에게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나 이런 의욕 상실과 무기력증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이제 새해에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서 평화와 희망의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책임을 따진다거나 남의 어두운 과거를 들추어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일들로부터 이제는 졸업해야 한다. 그런 일들은 먹고살 만 할 때, 생활에 여유가 있을 때의 일이다. 지금같이 힘든 때는 모두 하나로 뭉쳐서 오로지 앞길로만 나가야 한다. 그러면 또다시 머지않아 예전의 평화롭고 안락한 세월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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