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목요세평]

고대 신화를 보면 신들도 가장 높은 신에서부터 낮은 서열까지 각자가 맡은 역할이 있다.

신들의 역할을 보면 인간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많은 신들 가운데는 놀고먹는 신들도 존재한다. 불교에서 불법을 보호하는 여덟 신으로 천룡팔부(天龍八部) 가운데 하나인 간다르바가 그 예다.

간다르바는 원래 힌두교에서 음악의 신으로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며 매일 노래와 연주를 하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향(香)만 먹고 사는 성격을 가졌다.

이 신은 후에 불교에 유입되어 부처에게 교화된 뒤 불법을 보호하는 호위역할을 맡게 됐는데 한국에서는 이 간다르바가 할 일없이 빈둥거리는 건달(乾達)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인간의 조직사회도 마찬가지로 간다르바와 같은 사람들도 많다. 조직의 생산성이 20%의 일꾼들에 의해 나온다는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인 파레토의 분석처럼 모든 사람들이 조직에 헌신하지는 않으며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소수를 점하는 반면, 간다르바처럼 유유자적하며 현실을 즐기는 부류가 더 많다.

모든 사람은 조직에 속해 살아가고 있으며, 크든 작든 조직집단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으며 조직에서 인정받고 승진하기를 원한다. 또 한편으로 사람들은 조직에 대해 욕구불만이 많고, 많은 일을 시킨다고 느낀다.

조직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설립된 집합체로서 각자가 조직에 대한 가입을 선택할 수 있고, 자유계약에 의해서 참여하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일단 조직에 참여하게 되면 구조적 측면에서 조직의 기능과 효율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조직은 이처럼 현대인과 뗄 수 없는 집합체다. 조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기 때문에 때로는 조직이 개인의 역량에 의해서 발전하기도 하며, 조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개인이 성취욕을 실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조직은 현대인에게 중요한 소속의 준거틀이다.

대표적인 조직으로는 기업, 정부, 공기업 조직, 그리고 비영리조직 등 열거하자면 수없이 많다. 사회는 이런 조직 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특정 조직, 그것도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을 책임지는 조직들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위기적 징후가 아닐까? 100만 청년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안달하고 있고, 경제를 살리는 법안을 처리해달라는 기업계의 호소도 거세다. 일자리를 뒷받침하는 정책법안들이 대기하고 있지만 정치 쪽에서는 영토싸움에 사실상 개점휴업 중이고, 한계산업의 구조조정도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조직은 유지존속의 메커니즘과 그 조직이 가진 목표실현 두 가지가 가장 큰 과제이며, 이를 실현하지 못하면 그 조직은 해체되든가 존립근거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조직 내에 만연하는 무능과 질시는 조직을 마비시키는 질병들이다. 내가 속한 조직이 혹시나 존립근거를 상실한 조직은 아닌지, 변화를 싫어하고 현상유지에만 급급하지는 않는지 되새겨볼 때다.

성취감이 없거나 자만에 빠지거나 무관심이 팽배한 조직에는 희망이 없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우리 모두 내가 속한 조직이 시간만 소비하고 유유자적하는 간다르바의 향연에 몰두하고 조직이 아닌지 되짚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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