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자 단국대학교 교수
[아침마당]

정부가 똥을 먹어 치운다, 그것도 새똥을. 역사적으로 쓰라린 경험을 했다면 그것을 통해 배워야 하거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결코 융성할 수 없다'는 명제를 떠올려 본다.

지난달에 20여 일간 페루에 다녀왔다. '리카르도 팔마 대학교를 통한 한국학과 한국문화 전파'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며칠간 페루를 둘러봤다.

'제2의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바예스타스라는 섬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파라카스라는 동네의 작은 선착장에 이르자 이곳만 안내하도록 돼 있는 별도의 가이드가 따랐다. 멀리 망망대해에 한 조각 길게 퍼진 섬, 가까이 가 보니 섬에는 새떼들이 정말 바글바글했다. 그런데 저 새들이 황금알을 낳는다고 했다.

아니 실은 새들이 싸놓은 똥이 황금덩어리였다. 저 새똥을 놓고 국제전쟁까지 일어났으니 말이다. 새똥이 모이고 모여 퇴적한 것을 구아노(Guano)라고 한다. 페루의 새똥산업은 역사도 길고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세기는 유럽에서 산업혁명뿐만 아니라 농업혁명도 일어난 시기다. 세계적인 규모로 농산물 증대가 이뤄지면서 페루의 구아노가 천연비료로 각광받게 됐다. 페루는 그야말로 새똥으로 돈벼락을 맞은 것이다. |

엄청나게 쌓여 있는 새똥을 퍼 담기만 해도 그냥 돈이 됐다. 욕심이 화를 불렀다. 페루 정부는 이 구아노를 담보로 대규모 설탕 플랜테이션에 투자하게 되고, 이는 국가채무의 증가로 이어졌다. 그런데 과잉 생산된 설탕으로 인해 가격이 폭락하면서 이 사업이 실패로 돌아갔다. 페루는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디폴트 선언을 하게 됐다.

이로 인해 페루가 구아노를 국유화하며 통제하자 페루의 구아노에 의존하던 유럽 농업이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칠레를 도와 페루를 응징하는 전쟁을 벌였다. 이때 페루는 일방적으로 패배하면서 막대한 부채를 떠안는다. 그야말로 국제적인 자원전쟁이 페루의 새똥을 두고 일어났던 것이다.

한때 페루의 새똥은 화학비료가 생산되면서 관심을 잃는 듯했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웰빙바람이 불면서 페루의 이 천연유기농비료는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지금 세계적인 자원 구아노가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어서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가이드에게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구아노를 채취하는 힘든 일은 노동력이 가장 싼 쿠스코 주민 일부만을 데려다 시킨다. 더 큰 문제는 구아노를 통한 경제적 이익이 지역에 전혀 없음은 물론, 국가에도 얼마나 되는지 조금도 알려진 바 없다는 사실이다. 페루는 한때 구아노를 유럽에 팔아 남미 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정부의 잘못된 선택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하루아침에 빈국으로 전락하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새의 잘못도, 새똥이 변한 것도, 지역민의 게으름 때문도 아니다.

값비싼 새똥을 먹어치우고 입 씻고 마는 관리자의 태도가 페루 국민을 시름 깊게 만들었다. 정치는 관리자가 하는 것이고 국민은 국가의 관리자를 뽑는다. 학연·지연·인맥상으로 나와 가까운 사람이 의원이, 대통령이 됐다는 잠깐의 우월감(?), 성취감(?)을 갖게 하는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를 잘 하여 지역에, 국가에 오래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