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당(唐)나라 측천무후의 좌사(左史)였던 동방규가 쓴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란 시의 한 구절이다. 남녘 제주에서 화신이 들려오고, 남도의 길목에도 매화가 피어나건만 봄이 봄 같지 않으니, 서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춘래불사춘’이다. 

내일(5일)은 24절기 중 세번째 절기인 경칩이다. 그러나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으니 많은 국민들이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선거일이 달포 앞으로 바싹 다가왔지만 경기는 암울하고, 정치도 어둡긴 매한가지다.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급속히 냉각된 한반도 정세도 예측불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이즈음이 되면 초목의 싹이 트고 동면하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기어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치권만 유독 얼어붙은 국민들의 마음과 동떨어져 있는 형국이다. 

‘닭이 울면 아침이 온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칠흑 같은 암흑 속에 갇혀 있다. 우리 사회 청춘 군상 앞에도 짙은 어둠뿐이다. 국민 모두가 진정 봄을 기다리고 있지만 봄은 아직도 저 멀리서 제자리를 맴도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도록 차가운 바람을 불게 하는 꽃샘추위처럼 꼭 그 모양이다.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선거를 임박해서야 선거구를 획정하는 등 선거구 실종이 장기화됐다. '깜깜이 선거'라는 조롱을 받아도 국회는 막무가내였다. 정치신인들은 자신들이 뛰어야 할 마당(선거구)도 없이 우왕좌왕해야 했다. 민의를 대변한다는 여야 정치인들의 오만에서 비롯됐다. 

선거구획정안도 부실하다. 법률이 아닌 정치권의 주고받기로 획정기준을 정하다 보니 불합리한 선거구 쪼개기로 게리맨더링 논란이 불거지는 등 후폭풍이 적지 않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주요 대기업은 올 상반기 채용규모를 4.8%나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19개 국회에 붙은 식물국회, 무능국회란 말이 결코 허튼 말이 아니다. 국민들 사이에서 현역의원 '물갈이론'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가까스로 선거구가 획정됐다고 하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공천을 둘러싼 세력 간 이전투구가 판칠 게 자명하다. 벌써부터 권모술수의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공천 갈등이 앞으로 어디까지 확전될지 모른다. 

'낡은 말뚝도 봄이 돌아오면 푸른빛이 돌기를 희망한다'는 핀란드의 속담이 있다. 

이제 정치가 ‘국민의 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4.13 총선에서는 반드시 선량(選良)을 뽑아야 한다. 취업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봄을 그리워하는 우리의 청년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혹한과 폭설 못지않은 사회의 높은 벽에 응어리진 사람들에게는 온기를 전해줘야 한다. 

소외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봄이 올 때, 비로소 버들잎도 가지마다 푸르고 복숭아꽃 또한 송이송이 붉게 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해야 ‘봄이 오니 진정 봄 같다’는 춘래여진춘(春來如眞春)이 될 것이다. 이제 국민이 정치판을 걱정할 게 아니라, 정치권이 국민을 걱정하는 진정한 봄이 찾아오길 소망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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