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사랑에 재능·집념도 닮은꼴

▲ 아버지 김용성(사진 왼쪽)씨와 아들 김천재군이 이심전심으로 나란히 섰다.
제85회 전국체전 남고부에서 우승하며 명문 배구고임을 전국에 과시한 대전 중앙고 배구부의 새내기 세터 김천재(16)와 배구선수 출신인 아버지 김용성(43)씨.

창단 41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고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배구선수 중에서도 장신의 신체조건(1m88)과 뛰어난 재능, 배구를 향한 불같은 집념, 운동선수 같지 않은 선한 눈매가 무척이나 닮은 부자지간이다.

아버지 용성씨는 지난 76년 충남상고(현 중앙고)에 입학해 당시 14년의 역사를 가진 배구부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뛰면서 전국대회 준우승 등의 성적을 거두어 기틀을 마련했고, 아들 천재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멋진 플레이를 선보여 전국대회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해내 고교배구의 최강팀이라는 배구부의 명성을 드높였다.

현재 대덕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용성씨의 배구인생은 순전히 중학교 3학년 시절 당시에는 장신인 175㎝라는 신체조건 때문에 시작되었다.

금산군 동중학교 2학년 재학시절이었던 지난 75년 10월경 체육교사로 부임한 장근태 선생은 교내에서 키가 큰 학생들을 선발해 배구훈련에 들어갔다.

이때 다른 학생들에 비해 월등하게 장신이었던 김 교사를 눈여겨보던 장 선생의 권유로 배구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배구에 문외한이었던 김 교사가 운동을 하겠다고 하자, "공부하러 학교를 간 놈이 웬 운동이냐"는 부모님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배구훈련에 참가했던 타 학생들보다 신체조건 및 기량이 뛰어났던 김 교사의 가능성에 주목한 장 선생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지난 76년 당시 충남상고 배구부에 들어간 김 교사는 오른쪽 주전 공격수로 맹활약하면서 전국대회 준우승을 비롯해 수차례 3위에 입상하며 배구 명문고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충남상고 정준수 감독(현 대덕대 교수)과 김행이 코치의 권유로 실업선수가 아닌 사도의 길을 택한 김 교사는 충남대 체육교육학과(80학번)에 입학해서도 배구부를 국립대체육대회 우승팀으로 만드는 등 눈부신 선수생활을 했다.

하지만 대학 3학년 때 학도호국단(ROTC)에 들어가면서 안타깝게 선수활동을 접은 김 교사의 배구에 대한 열정은 17년 뒤 아들 천재에게 유전되면서 새로운 날개를 펼치게 된다.

현재 대전시배구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 교사는 6년 전 당시 만년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천재에게 "배구 한번 해 볼래"라며 권유하면서 배구에 대한 사랑을 대물림했다.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배구를 시작했던 김 교사와는 달리 천재는 적극적인 지원 아래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위해 배구부가 있는 유성초로 전학한 천재는 철저한 선후배 관계와 텃세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선수 출신의 아버지의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배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갔다.

중앙중학교 배구부 시절, 아들 천재를 포함해 동기생 7명 모두가 공격수인 점을 고민했던 김 교사는 장신의 키를 이용한 세터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에 주목해 세터로의 포지션 전환을 제안한다.

중 3학년 때 공격수에서 세터로 포지션을 전환한 천재는 아버지의 예측대로 기량이 더해지면서 이름처럼 '장신의 천재 세터'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천재의 선전에 힘입은 중앙중 배구부는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 3위에 오르며 중학교 배구의 메카의 명성을 이어갔다.

고교 배구의 명문이며 아버지의 모교이기도 한 중앙고 배구부에 올해 입학한 천재는 전국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배들과 경쟁하면서, 고교 최고의 지도자로 불리는 김영일 감독과 김영호 코치의 조련을 받으며 초고교급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이번 전국체전 예선전에서도 익산 남성고를 맞아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예선 탈락의 위기를 직면했던 중앙고는 새내기 세터 천재를 투입해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펼쳐준 천재의 선전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면서 고비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이후 천재는 전국체전 결승까지 3∼4경기에 더 투입되면서 팀의 어려운 순간마다 고비를 넘기는데 기여했다.

운동선수의 특성상 집이 아닌 합숙소에서 생활하면서 빡빡한 훈련 스케줄과 대회 출전을 소화해 내는 아들 천재를 보면 안쓰럽지만 김 교사는 고교 2년 후배이자 중앙고 감독인 김 감독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김 감독도 단체경기의 특성상 선배 위주의 선수를 기용해야 하는 입장 때문에 김 교사에게 어쩔 수 없는 미안한 감정을 느끼면서 천재를 더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1주일에 한번 보기도 어렵지만 만나면 배구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천재는 국가대표로서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내고 실업배구의 최고 선수로 손꼽히는 삼성화재 김세진 선수와 같이 유명한 배구선수로 활약하고 싶어한다.

천재는 또한 아버지가 못다 이룬 배구선수의 꿈을 실현하고, 한국 최고의 프로감독이 돼 배구인으로서의 인생을 완성하는 게 꿈이다.

아버지의 못다 이룬 배구의 꿈을 이어 나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천재와 아들의 꿈을 실현하려는 대선배로서 아버지로서 헌신을 다하고 있는 김 교사의 대를 이으려는 노력이 뜨겁고 한편으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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