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개판’은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른바 개(犬)들이 먹을 것을 놓고 서로 먹겠다고 전쟁을 벌이는 형국을 일컫는다. 개판의 또 다른 유래는 6·25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부에서 음식을 나눠줄 때 외쳤던 말이다. ‘개판 5분 전’은 먹을 것을 나눠주는 판을 열기(開) 5분 전이라는 의미다.

20대 총선일이 두 달여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판을 펼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정치판은 여전히 개판이다. 후보들이 뛸 마당(선거구)도 없는 ‘지역구 실종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어딜 가야 제 밥그릇(공천)을 차지할 수 있을지 주판알을 튕기며 줏대 없는 변신을 서두르는 후보들도 적지 않다.

‘나갔다 들어왔다, 붙었다 떨어졌다, 떠났다 돌아왔다”를 되풀이하는 뺑소니와 변절이 판치고 있다. 떠나는 사람이나 남아 있는 사람 모두 '낮은 자세'로 국민을 받들겠다고 호언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늘도 또 다시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며 혹세무민하고 있다. 국민들은 그저 황당할 뿐이다. 눈앞의 이익을 쫓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구태에 신물이 난다. 진지한 반성이나 참회는 실종된 지 오래다. 입으로는 정치개혁을 외치면서 늘 낡은 선거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후진적 정치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그야말로 개판이다.

'空腹高心如餓虎(공복고심여아호) 無知放逸似顚猿(무지방일사전원)'

속은 비고 마음만 높으면 굶주린 호랑이와 같고, 아는 것 없이 놀기만 하면 넘어진 원숭이와 같다는 말이다. 이 게송(불덕을 찬미하고 교리를 서술한 시구)은 야운 스님이 쓴 '자경문'에 나오는 것으로, 인간은 무엇보다 교만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정용기 새누리당 의원(대전 대덕)의 갑질 논란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그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자메시지로 취업 청탁을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촉발됐는데, 더 큰 논란은 그의 궁색한 변명에서 비롯된다. 취업 청탁을 한 곳이 국감대상이나 공공의료기관도 아니고 선배가 운영하는 개인병원이기 때문에 소위 '갑질'은 아니었다는 게 그의 해명. 하지만 정가에서는 ‘내가 하면 착한 청탁이냐’며 그의 궤변을 폄훼하고 지나온 행적까지도 꼬집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청장 재임시절 무상급식과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등을 놓고 대전시장과 ‘맞짱 토론’을 제안하며 사사건건 부딪치더니 이제 와서는 정치공학적 화해 제스처를 보낸 데 따른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생물’과 같다고 하지만, 변심의 저의를 의심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치 혀의 중요성을 설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절제할 줄 아는 혀는 최상의 보배라고 했다. 하지만 혀의 마력은 모든 마력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위정자는 누구보다 각별한 처신과 절제된 언어표현이 필요하다.

이제 사흘 후면 민족최대의 설 명절을 맞게 된다. 온 가족이 모여 새해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빌며 웃음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물론 경향각지에서 달려 온 일가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담을 나누다 보면 ‘정치’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이번 명절에는 오는 4월 13일 총선에서 어떤 기준으로 국회의원을 뽑아야 할지, 원칙과 소신을 정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무리 정화하려 해도 정화되지 않는 것이 정치판이라고는 하지만, 국민만이 정치판을 정화할 수 있다는 믿음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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