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답설야중거 부수호란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에도 발걸음을 가벼이 하지 마라. 오늘 나의 발걸음은 언젠가 오게 될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라는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다. 한순간, 한걸음, 한마디에도 신중을 기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정용기 새누리당 의원(대전 대덕)의 갑질 논란이 명절을 앞둔 서민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정 의원은 최근 국회 본회의장에서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로 대전의 한 중소기업 대표로부터 사위와 딸의 취업(인턴) 부탁을 받고, 고교 선배가 운영하는 개인 병원장에게 부탁하는 장면이 한 언론사의 카메라에 찍혔다. 정 의원은 카톡 문자를 통해 이 업체 대표에게 '결정권이 있는 병원장에게 알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부탁을 한 병원이 국감대상이나 공공의료기관도 아니고 선배가 운영하는 개인병원이기 때문에 소위 '갑질'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변명은 궤변과 다를 바 없다. 국감기관이 아니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해도 된단 말인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가. 가뜩이나 청년실업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마당에 개인적인 친분을 앞세워 취업 청탁을 한다면 소위 ‘백’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의 자녀들은 어디에 취업해야 한단 말인가.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로운 국가란 ‘차등이나 불평등이 정당화되지 않는 국가’라며 공정한 절차를 강조했다. 공정한 절차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회의 균등’이다. 국회의원이 공정한 절차를 빼앗는 나라에 사는 국민, 그 나라의 힘없는 서민은 늘 허망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솝우화를 보면 ‘욕심쟁이 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배고픈 개가 잔칫집에 들러 고기 한덩이를 얻었다. 입에 고기를 문 개는 신이 나서 개울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넜다. 그런데 다리 중간 쯤에서 문득 밑을 내려다보니 거기에도 웬 개 한마리가 입에 고기를 물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물 속의 개가 가진 고기는 제 것보다 더 커 보였다.

‘옳지! 저 걸 빼았아야지.’ 욕심 많은 개는 물 속의 개를 향해 큰 소리로 짖었다. “멍! 멍!”

순간 물고 있던 고기가 첨벙하고 물에 떨어져버렸다. 짧은 우화지만 많은 교훈을 담고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 남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야 말로 어떠한 변명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파렴치와 다를 게 없다.

이제 70여일 후엔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우리는 이제, 적어도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가릴 줄 아는 선량을 뽑아야 한다. ‘해야 할 말’과 ‘해선 안 될 말’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늘 정치인의 현란한 말과 위선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한, 건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은 언제나 요원한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엄중하게 웅변하고 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제 잇속만 챙기려는 권력자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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