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이응노미술관 관장
[아침마당]

단군 이래로 한국미술의 국제적인 지명도와 인지도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세계적인 경매시장에서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고가에 거래되고, 프랑스, 영국, 미국 등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도시들의 주요 화랑들에서 한국작가 초대전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병신년(丙申年) 새해 벽두부터 생존 작가로는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은 이우환 화백의 '작품 위조', '작품감정서 위조' 등 위조라는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붙는 사건들로 언론과 미술계가 시끄럽다. 특히 이 사건에 휘말린 1978년 작품 ‘점으로부터 No.780217’은 4억9000만원(수수료를 포함하면 5억7085만원)에 낙찰됐었다고 한다.

지난해 연말에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작품의 진위논란 사건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유족들과의 갈등이 대외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화가들 작품의 물리적 가치가 높아질수록 구설수가 따르게 되는 것은 사건의 차이는 있어도 박수근의 ‘빨래터’처럼 예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기하학적 경매낙찰가격과 작품위조 사건 등을 중심으로 자칫 미술계의 현주소를 잘못 이해한다면, 예술가의 진정성과 작품의 숭고한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흐, 피카소, 이중섭 등 유명 작고작가의 위작시비는 끊이지 않고 나온다.

위작들이 미술시장에서 헐값에 거래되다 보니 진품의 가치는 떨어지고 작가의 명성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이응노미술관은 작고작가인 이응노 화백의 작품들이 이런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관리하고 있다. 마침 이응노 화백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프랑스 파리의 시립세루누시미술관을 비롯해 디종시의 르 꽁소시움(현대미술관) 등 프랑스 공공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다. 파리시립세루누시미술관의 ‘파리-서울-파리’는 일찍이 파리에서 유학하고 파리를 거점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이응노, 김환기, 김창렬 등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명하고 있다.

동시에 이응노 화백의 특별 코너를 마련하여 문자추상과 군상 그리고 대나무 작품 등 그의 대표작품과 나란히 1964년 그가 세웠던 ‘파리동양미술학교’의 실기수업 방법 및 그 결과물을 전시해 그가 프랑스 미술계에 끼친 영향과 성과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한편 디종시의 르 콩소시움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1세대이자 프랑스 유학 1세대인 ‘이응노와 한묵’ 전시를 마련했다. 이 전시에서 이응노는 세예에서 출발해 문인화를 거쳐 구상과 비구상의 세계를 넘어 유럽 현대미술과 조우하는 등, 실험과 모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확립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을 한 단계 높인 거장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한국작가로는 유일하게 수많은 유럽인들에게 서예와 한국화를 가르치는 등 한국미술을 서구에 전파하는 교두보적인 역할을 한 이응노 화백의 노력이 새롭게 느껴진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수준의 한국미술의 토대를 마련해준 그의 숭고한 업적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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