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관 청주의료원장
[목요세평]

청주에 내려오면서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드뇨, 두견화 피는 언덕에 누워 풀피리 맞춰 불던 옛 동무여' 하던 오래된 노래가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주를 떠난 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는 명절이나 생신 같은 때는 내려왔지만 그 후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오지 못 했다. 그러다가 청주의료원장 발령을 받고 내려오면서 걱정이 없진 않았으나 기쁨이 훨씬 컸다.

가장 큰 이유는 청주가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막연하지만 반가워할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 물론 변했겠지만 어릴 적 밟고 만지며 놀던 그 땅 그 흙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도 사투리 속에 깊이 배어 있는 충청도 특유의 정서에 대한 기대감,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

청주는 많이 변했다. 필자가 태어난 청원군 강외면도 청주시에 편입돼 있고, 고등학교 시절 누나와 자취하며 새끼줄에 연탄 꿰어 오르던 골목길이 그리운 수동 우암산 밑 동네는 수암골이라는 호화로운 까페 동네로 변했다. 또 장래의 꿈을 키우던 고등학교 원탑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성길' '방아다리'라는 곳도 다시 확인하고는 '거기가 거기였어?'하며 크게 웃는 일도 있었다.

더 바뀐 것은 청주의료원이다. 당시 스무 명도 안 되던 의사가 지금은 50여명이 넘고, 550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공공보건의료를 수행한다는 사명감으로 보건복지부 주관 운영평가 3년 연속 A 등급, 지방의료원 중 최초로 2주기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획득하는 등 지방의료원 중 최고수준의 위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정말 상전벽해의 변화다.

여기에 충북도가 국가 경제 4%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듯이 우리 의료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최고의 지방의료원'의 위상을 굳건히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고향에 찾아오니 ‘그리던 고향'임에 틀림없으나, 많이 변했음도 확인한다. 필자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가장 중요한 시기인 사춘기를 보낸 후 서울로 상경해 학업에 매진도 하고, 학생들도 가르친 후 47년 만에 돌아왔으니 변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회의를 하며 직원들끼리 '그렇게 할껴 안 할껴' 하는 말을 들으면 '웃기려고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 정도로 필자도 변해 있다. 고향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울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분위기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속 마음은 변함없이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타향에서 지금까지 해 온 일이 의업이고 또 오랫동안 그 분야의 행정을 해 왔으니 그 경험을 토대로 이곳 고향에서 그 본디 가지고 있던 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다.

자취방에서 사창동까지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 통학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시절, 그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신세계 교향곡 중 2악장은 ‘그리운 고향’이라는 노래로 실기시험 곡이기도 했다.

조국을 떠나 미국에 간 드보르작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녹이고 부어서 만든 라르고의 느린 그 악장의 선율을 들으며 많은 여성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아름다운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이 청주의료원에서 만들자고 다짐하며 2016년 새해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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