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일 건양대학교 의무부총장·의료원장
[투데이포럼]

인류는 오랜 세월 자연에 정착해 살면서 감염병과의 전쟁을 지속해왔다. 일찍부터 역병이라고 불렸던 감염병들은 사회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인간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공격자였다. 역병이 도는 동안에는 사회규범이 무너지고 약탈 등의 범죄도 만연했으며 심지어 국가의 붕괴를 초래하기도 했다.

1920년대 이전 우리나라 10대 사망원인 중 1위는 콜레라, 장티푸스, 결핵, 홍역 등 감염질환이었다. 1990년대 이후 국가경제가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국민들의 영양과 위생상태가 좋아졌으며, 감염병 예방 백신이 개발돼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했다. 한마디로 보건위생분야가 개선되고 의료계의 발달로 이제 감염병과의 전쟁은 끝났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00년대에 들어와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감염병들이 다시 출현했다. 2010년 전후로 후진국형 질병으로 불리는 말라리아, 볼거리, 결핵, A형 간염 등을 비롯한 수인성 질환까지 급증했고, 특히 결핵은 OECD국가 중 발병률 및 사망률에서 1위를 기록하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경제발전에 의한 환경파괴 및 인구증가, 그리고 개인들의 면역력 감소로 이미 사라진 질병으로 여겼던 바이러스가 다시 생긴 것이라 분석했다. 아울러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하기도 했다. 2002년 전국민을 큰 혼란에 빠트린 사스(SARS)를 비롯해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Ebola), 그리고 지난해 메르스(MERS) 등이 대표적인 감염병이다. 특히 메르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 종류로 원래는 비교적 얌전한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는데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강력한 형태로 변이를 일으켜 사태를 심각하게 만든 것이었다.

현대사회는 전 세계가 1일 생활권 시대이다. 다시 말해 대규모 인구 이동을 통해 타국의 감염병이 순식간에 전 지구상에 급속히 퍼지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감염병의 위험에 노출돼있다. 더 무서운 것은 과학과 보건의료분야의 발달로 감염병은 더 이상 인류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의식이 팽배해져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내의 경우 감염병 연구에 대한 투자는 너무 취약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체계가 필요하며, 이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종합 연구센터의 설립은 너무나 시급한 과제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지구상의 주인 역할을 해오면서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대기오염, 토양오염 등의 환경문제를 초래했다. 성장이라는 이유로 자연을 마음대로 착취한 결과 생태계의 교란과 함께 여러 신종 감염병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의 조화를 무시하고 환경을 훼손하는 한 인류의 마지막 전쟁은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와 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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