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용 음성군수
[투데이포럼]

시오노 나나미가 15년에 걸쳐 내놓은 '로마인이야기'는 현대인에게 삶의 철학과 좌표를 제시하며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던 책인 만큼 다시 언급하는 것은 식상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대부분 어떠한 형태든지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감안할 때 로마라는 거대한 조직의 성장 요인을 말해주는 이 책에 다시 한 번 눈길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먼저, 로마인의 강점을 요약해 보자. 지성은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은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며,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은 카르타고인 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그 어떤 민족보다 광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로마가 융성한 요인에 대해, 세 명의 그리스인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디오니시오스는 로마인의 종교의식이 그 요인이라고 말했다. 인간을 계율로 다스리기보다 수호하는 형태의 종교인 로마종교는 다른 종교를 포용할 줄 알았고, 그를 통해 다른 민족들을 동화시켜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던 폴리비오스는 집정관 제도를 통해 왕도정치의 정점을 살렸고, 원로원 제도를 통해 귀족정치의 장점을, 민회를 통해 민주정치의 장점을 살린 로마공화정의 독자적인 정치체제에 원인이 있다고 했다. 이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함으로써, 로마는 국내의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거국일치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플루타르코스는 적국 출신인까지 포용하여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생활방식이야말로 로마가 융성한 요인이라고 단언했다. 같은 라틴족에 대해서는 출신지를 따지지 않고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적국 출신인 경우도 일정기간 로마에 거주하기만 하면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로마인은 이기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나서 관용을 배품으로써 그 응집력을 높여 나갔다. 로마가 융성한 요인을 찾는다면 이 세 가지를 전부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이 지적한 로마 융성의 요인을 한마디로 한다면 이질성에 대한 수용과 융화를 통한 로마식 조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던 중에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로마인은 패배하면 반드시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그것을 토대로 기존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개량해 다시 일어서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광대한 제국도 아니고, 200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있는 유적도 아니며,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상대를 포용해 자신에게 동화시켜 버린 그들의 개방성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 현대인은 어떠한가. 그로부터 200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종교적으로는 관용을 베풀 줄 모르고, 통치에 있어서는 능력보다 이념에 얽매이고, 여전히 다른 민족이나 다른 인종을 배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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