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목요세평]

개인이나 정부가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어떤 행동이나 제도로 실행에 옮겨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의 과정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시간지체라 하고, 사회학에서는 문화지체라 한다. 사회 기술의 급속한 변화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적 정신적 가치의 지체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 여러 곳을 보면 기술과 제도간의 부조화, 지체 현상이 현저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후면 민주화와 산업화 시대를 담당했던 그들이 퇴장한다. 자본주의 호황기의 주역이었고 6월 항쟁과 민주화를 이끌고 평생직장 신화를 믿었던 그들이 IMF 이후에 씁쓸하게 정년을 맞으면서, 그 시대에 그들에 의해 탄생했던 노동제도 또한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저성장은 일상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과 미국도 더 많은 고용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저성장의 덫에 걸려 있고, 수년 후 우리는 1%대 성장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에 맞는 전략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강의 기적을 다시 기대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마지막 기회는 남아 있는 법이다. 우리의 사고방식, 행동패턴, 가치관도 이런 변화에 맞춰가는 자세가 요구된다.

산업화 시대를 선도하던 조선, 철강, 유화, 건설 등 주력산업이 이제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당장의 부실을 메우는데 급급해선 안 된다. 한때 최고의 자동차 메카였던 200만 산업도시 디트로이트의 파산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고비용 구조를 허물고 잘라낼 부분은 잘라내며, 한 단계 높은 기술과 위기의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고사된다.

무조건 분노하는 사회풍토도 버려야 할 과제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결과가 과정을 덮어버리고 빠른 것만 추구하다보니 상대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문화가 자라지 못했다. 그간 소홀히 했던 절차적 정당성을 새로 세워야 한다. 떼 법이 우선하는 국민 법 감정도 고쳐야 분노하는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학교와 기업, 2차적 조직들이 인성교육과 직업교육에 좀 더 많은 투자를 통해서 사회적 갈등과 폭력을 감소시키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

새해벽두부터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중국 증시 폭락 등 우울한 뉴스가 시야를 덮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의 경제력, 군사력은 세계 10위권이다. 인구도 20위권이다. 강대국의 요소가 없는 게 아니다. 우리를 약소국이라고 폄하할 이유도, 스스로를 자학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보다 강대국의 요소를 더 많이 갖고 있다. 세계로 발산하는 한류 문화에서 우리는 문화대국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은가!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선진국을 따라가는 길이 아니라,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만들면서 선진국으로 들어서야 하는 길이다.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길이기에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경제성장과 기술변화에 지체되어 있던 전근대적인 가치관과 행위를 바꾸는 노력이 뒤따라야한다. 사람들의 성벽(性癖)도 개조하고, 국가도 쇄신해보자. 국민과 정부, 사회와 기업이 힘을 모아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이 합치될 때 선진사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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