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김진용 대전서부교육지원청교육장

을미년(乙未年) 한 해도 우리 삶에 시간의 흔적을 새겨놓고 과거의 층위로 사라져가고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올 한 해도 많은 사건들이 우리의 역사 속에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을 새겨놓았다. 19로(路)의 좁은 반상에서 두는 바둑을 수천 번 두다 보면 한두 번은 같은 판이 형성될 것 같은데, 지금까지 한 번도 동일한 판이 형성된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여서 과거의 어떤 시간도 우리 삶에 동일하게 나타난 적은 없는 것 같다.

돌궐 제국의 명장 톤유쿠크의 묘비명에는 "성(城)을 쌓고 사는 자(者)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기마 부대를 이끌고 초원을 누비며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달렸던 톤유쿠크는 성을 짓고 살던 정주민(定住民)을 제압하고 강성한 제국을 건설하였다.그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노마드(Nomad)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돌궐은 노마드이기를 포기하고 정주하였고, 역사에서 사라진 제국이 되었다. 톤유쿠크의 묘비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깊이 새겨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보건대, 선대에서 이루어 놓은 공(功)을 지키기만 해서 살아남은 제국은 없다. 한때나마 강성한 제국을 건설했더라도 정주가 지속되면서 모두 생성의 힘을 잃고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삶은 활력이 없는 정주민의 삶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사건과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조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잘 한다고 하여 그것에 머무르기보다는 타자와의 교유를 통해 내 삶의 한계를 뚫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노마드가 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내가 누려온 편안함 혹은 익숙함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쉬운 결단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진정성이 있는 삶은 어려움에 맞서는 노마드가 되어 내 삶을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데 있을 것이다. 삶을 익숙함과 안락함에서만 찾는다면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새로운 삶의 영역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탈주의 선을 달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학기가 되면 만나게 되는 학생들과의 만남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접속이 되어 늘 나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 보여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이웃과의 만남도 늘 생성을 가져올 수 있다. 내 주위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삶은 새로운 생성을 낳을 수 없다. 새로운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병신년(丙申年) 한 해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이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노마드가 되어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뱃머리를 돌리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 이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향해 나아갈 때 배가 안전한 것처럼, 인생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도전을 만날 때,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이겨내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노마드가 되어 안락함을 뒤로하고, 생성의 길을 찾아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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